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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여전히 중요한 진실 보도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30일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지금의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재판에서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관련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기금 조성을 통해 배상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협상안을 거절했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청구권협정의 불법적 해석에 근거한 국제법 위반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이후 일련의 조치를 통해 한국에 수출규제 조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일본은 이후 안보 문제로 옮겨 탔다. 자기들만의 ‘명분’을 더 굳건히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못지않게 이를 다루는 일부 한국 언론 보도도 심각하다. 우리 언론들은 부당한 일본 조치를 정파적 손익 여부에 따라 왜곡하는 일부 정당들의 반응을 분석·비판하기보다는 사실보도라는 명분 아래 그대로 전달하는 ‘따옴표 저널리즘’ 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일부 주요 언론들이 이번 사태의 계기가 된 대법원의 판결을 제대로 분석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과 한국이 외교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와 별개로, 국가 간 협정이 개인청구권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게 국제법 원칙임을 부정하고 배상 판결을 한 대법원이 문제라 지적하는 언론들이 있다. 그 언론들에도 법조 전문기자가 있을 것이고, 그 기자들은 언론인으로서 양심을 어떻게 유지할지 의문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이로 인해 한국 경제가 겪거나 겪을 어려움을 핑계로, 배상을 요구하는 개인의 권리를 부정하려 했던 사법농단까지 외교적 해법을 추구한 것인 양 포장하려 했다. 사법농단의 정치적 복권, 나아가 박근혜 국정농단까지 복권시키려는 정치세력과 언론이 있다. 


이런 목적으로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가 한일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했다고 사실을 왜곡한 언론도 있다. 당시 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일제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부인하고, 일본 헌법상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서 배상 문제가 청구권의 논의대상이 아니었어도 우리 정부로서는 신의칙상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피해자 개인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왜곡한 것이다. 더군다나 아베 정권 이전에는 일본 정부도 일본 의회에서 개인청구권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진실까지 외면하는 것이 언론일까?


일본은 수출규제의 명분을 안보 문제로 옮겼다. 하지만 전략 물자의 수출규제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철저하게 집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이런 명분을 내세웠던 근거가 우리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에 심각성이 있다. 전략물자 불법수출 적발 건수를 마치 수출 건수인 양 오해하도록 기사를 내보낸 언론이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 정부가 언급하고 일본 언론이 보도하자, 이 언론이 다시 보도하는 한·일 간 ‘기사 주고받기’가 이루어졌다. 한·일 우익의 전략적 동맹인가?


일본의 부당한 규제조치에 항의하는 불매운동이 민간차원에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 불매운동을 두고도 경제현실론을 내세워 불매운동을 감정적 대응으로 몰아가려던 언론이 있다. 그리고 연장선상에서 감정에만 호소하는 정부라는 무능론을 펼친다. 민간차원의 불매운동은 외려 그 일부 언론이 내세운 외교협상론의 협상력을 좌우하는 원천이지 않을까? 이런 언론들의 이름이 뭔지를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기사를 읽은 현명한 독자들이 판단할 것이니.


국익만을 앞세워 우리나라에 유리한 보도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떤 시기에도 언론은 진실을 전달하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일부 언론들의 문제는 국익에 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에 반하기 때문에 심각하다. 미디어 환경 변화로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언론이 위기에 처하고 있다. 경영의 위기일까, 신뢰의 위기일까?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