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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유튜브 어린이 출연자 ‘보호장치’ 필요

어린이를 내세운 유튜브 인기 채널을 두고 아동 학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유튜브 세계에서 어린이 크리에이터들이 상당한 수의 팬덤을 거느린 유명인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이처럼 어린이가 미디어를 통해 유명인이 되는 경우 윤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어린이의 권리에 대해 충분히 사고하지 못해왔다. 예컨대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미디어 산업이 어린이의 상품성을 무책임하게 이용하고, 일부이긴 하지만 부모들 역시 돈과 명성을 기대하면서 아이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면서 ‘부모의 동의’라는 허울 아래 어린이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린이 배우들도 많은데, 왜 유독 리얼리티 프로그램만 더 문제를 삼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상 배우는 극화된 내용을 연기하며, 연기는 ‘노동’으로 간주될 수 있어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있다고 본다. 반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자신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청자들도 그렇게 이해하기 때문에 실제 인물과 역할 간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 일상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더 높은 것 역시 사실이다. 심지어 미국의 경우,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는 직업으로서의 연기를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제작자 측이 법적 책임을 피해 가기도 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방송 출연이 어린이 출연자의 삶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영향이 어떤 것일지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매개되는 다양한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사전에 통제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BBC는 “부모의 동의를 얻었다 해도, BBC는 어린이 출연이 가져올 영향과 예상 가능한 결과를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라고 제작 가이드라인에 명시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방송에 나오고 싶어하더라도 이로 인해 어떤 삶에 변화가 생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 방송에선 이미 자신의 삶에 미칠 영향력을 판단하기 어려운 어린이, 심지어 영아들이 등장한 지 오래이며 어린이 출연자들이 가져야 할 권리 역시 그저 부모의 동의라는 면책 속에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방송은 부모 이외에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방송국이라는 주체가 명백하게 하나 더 있지만, 그마저 존재하지 않는 개인 방송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유튜브는 사후적으로 문제적 콘텐츠를 구분하여 규제하고 있으나, 개인 방송의 특성상 주목 경쟁을 위한 자극적 콘텐츠가 양산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 개인 방송의 어린이 출연자는 그 행위가 노동이나 직업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서 법제도적 보호 장치가 거의 없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고 어린이가 향후 경험하게 될 장기적 영향력 역시 오로지 부모의 판단과 돌봄에 달려 있다. 어린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프로그램 제작에 투자하고 있는지, 해당 콘텐츠의 내용과 제작 과정이 어린이의 신체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지에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사적 공간에서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어린이의 방송 출연에 대해 무조건 규제 일변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전통적인 방송에서부터 어린이 출연자의 이익과 권리를 최우선하지 않았던 인식 부족 문제가 개인 방송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문제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유튜브는 선언적으로 어린이 출연자 보호를 위해서 제작자가 어린이의 인권과 복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제작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지만 공적인 개입 없이 이를 개인의 양심에 맡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어린이 출연자가 하는 일이 놀이가 아니라 일이라는 점에서 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보다 구체적으로 시작될 필요가 있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