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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지금은 당연한 것들, 훗날엔 어떻게 보일까

넷플릭스에 빠져 휴일엔 미드를 하루종일 보았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중국 무협드라마를 한 아름 빌려서 찐 옥수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어릴 적 여름 방학과 같습니다. 요즘 미국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매드 맨>을 정주행 중입니다. 한국전에서 시작하여 우연의 사건을 겪은 주인공이 뉴욕 매디슨가의 광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부터 쿠바에서 벌어진 미국과 소련과의 갈등 속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베트남에서 전운이 드리워지는 불안한 사회의 모습까지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 또한 깨알처럼 담고 있습니다. 


예전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가감 없이 보여주어 에미상을 10개도 넘게 받았다는 이 드라마 속 삶의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담배를 피우며 사무실에 들어서고 근무시간 중 직장 동료와의 대화에는 독한 위스키가 빠지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성적인 농담을 서슴지 않으며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언사도 난무합니다. 술을 마시며 운전하고 임산부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그 시절은 정말 야만의 세월이었습니다.


“이 사진의 장면을 기억하면 아재”라는 인터넷 짤방 속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부터 라면땅 과자 봉지에 이르는 추억을 돋는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예전 사진 속 우리의 삶 속에도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나 산속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 같은 것들이 흔히 보입니다. 이 역시 지금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먹고살기 힘들고 무지하던 시절엔 그랬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그토록 거칠었던 세월이 그 시절 사람들에겐 당연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 훗날의 사람들에겐 또 얼마나 야만적으로 보일는지요.


그룹 핑클이 출연한 JTBC 예능 '캠핑클럽' 포스터


최근 TV 프로그램 <캠핑클럽>에는 왕년의 걸그룹이 나와 다시 뭉친 장면을 보여줍니다. 스무살도 되기 전 어린 나이에 만나 연예인이 되어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을 함께하다 해체 후 각자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 데뷔 20년 만에 다시 모였습니다. 팬들에겐 사이좋은 친구들처럼 보였던 걸그룹의 멤버들은 당시 회사동료 같은 직업적 관계로 맺어져 서로의 결혼식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합니다. 이제 성숙한 나이에 만나 20년 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합니다. 마치 중년에 다시 만난 여고 동창처럼 한때의 불편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젠 너그럽습니다. 삶이 그러합니다. 오래전 과거는 언제나 그립게 느껴집니다. 아스라한 추억은 안개 필터를 넣은 렌즈와 같이 아련한 따뜻함을 전해줍니다. 시간이 흘러 철이 든 모습은 예전의 나의 미숙함을 살펴볼 여유를 전해줍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우리에게 잊고 살던 추억을 미화하여 보여주었습니다. 바라보면 빙긋 웃음이 나던 예전의 세월엔 기실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픔도 불편함도 어지간히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확실한 것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성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보다 불리한 사회적 환경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삶이 조금 더 편해졌어도, 물질이 더 많아 조금 더 윤택해졌어도 수십만년의 우리 종의 삶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면 바뀐 것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너무도 나약하여 함께할 수밖에 없도록 진화한 우리 종의 운명은 다른 이와 생활과 마음을 나누는 것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라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매드 맨> 속 냉정한 캐릭터의 세 아이의 아버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잊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의 교류는 어느 시대라도 참인 명제와 같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