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위대한 유산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이 매주 새로운 상황 속에서 펼치는 좌충우돌 도전기”, 바로 MBC의 예능 <무한도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2006년 5월 시작해서 2018년 3월 종료한 총 563화의 에피소드는 시대의 정신을 담고 엄청난 공감을 얻으며 하드코어한 팬층을 형성하였습니다. 종영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케이블 채널에서는 재방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6시간 만에 힘들게 마라도까지 가서도 결국 짜장면을 못 먹는 정형돈의 절규를 보여준 에피소드는 ‘mbc entertainment’ 채널에 2012년 게시돼 1000만이 넘는 페이지 뷰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당 채널에 전체 방송분이 올라오자 TV를 보던 방식처럼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진 팬은 “한 시간짜리 너무 좋다”라는 댓글을 달며 기뻐했습니다.

 

시청자들의 팬심을 확인한 방송사는 ‘MBC 옛날 예능 다시보기’라는 뜻의 ‘옛능’이라는 채널에서 주요한 내용을 20분 내외로 내보내는 시도를 합니다. 이 역시 인기 있는 동영상의 경우 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얻어내며 지나간 방송 콘텐츠를 재이용하는 것이 꽤 효과적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여기에 4G를 넘어 5G로 데이터 통신 환경이 진화하면서 출퇴근 길 자투리 시간에도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가 스낵컬처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어가자 10분 이내의 동영상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5분 내외의 주요 장면 클립으로 편집돼 재창조된 ‘오분순삭’이라는 채널이 인기를 얻습니다. 이 채널 속 <무한도전> 코너는 현재 동영상이 무려 296개에 조회수가 80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명절연휴 오분순삭 채널에서는<[추석특집] 무한도전 n시간순삭 라이브 스트리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려 1만3000명이 넘는 사용자가 채팅 창에 그 당시의 추억이나 뒷이야기 등 자신의 팬심을 덕력에 담아 나누고 있습니다. 민족의 명절, 무한도전 동호인들의 랜선파티가 유튜브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온 디맨드(On demand)로 이루어지던 유튜브가 이제는 온 에어(On air)의 라이브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콘텐츠의 확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분순삭 채널에 게시된 편집물에 시청자의 댓글이 붙습니다. 왜 이 장면은 뺐는지, 혹은 더 재미있는 것을 함께 넣어서 편집해 달라는 요구들이 올라오자 방송사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채널의 이름은 ‘레빼미’, ‘레전드인데 빼서 미안하다’란 뜻이랍니다. 단순히 요청을 반영한 결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추가해 달라고 댓글을 단 사람들의 글이 함께 편집되어 보입니다. 이렇게 올라온 콘텐츠에는 다시 “소통해주시는 편집자님들 감사합니당”이라는 댓글이 따라오게 되고요.

 

‘다시보기’에서 ‘옛능’을 거쳐 ‘오분순삭’으로, 그리고 ‘레빼미’에 이르기까지 콘텐츠의 보물섬 <무한도전>은 몇 번이고 다시 소비되고 있습니다. 팬이 요청하고, 팬이 화답하여 편집하고, 다시 팬이 감사하는 덕질의 총합이 무수한 골수팬들에게 공명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OTT와 미디어 플랫폼의 확장으로 방송사는 계속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콘텐츠를 가진 제작자로서의 방송사는 아직도 한칼을 품에 안고 있습니다. 무한 팬을 보유한 <무한도전>의 무한복제와 가치의 무한창출이 팬심과 결합해 새로운 콘텐츠로 승화되며 사골을 우려먹는 재방송과 다시보기가 아닌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지 모른다 기대해 봅니다. 물론 그 위대한 유산의 유효기간은 그 시대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가 새로운 콘텐츠에 마음을 빼앗기기 전까지만 가능할 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