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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인공지능 편집자의 미덕

잠시 당신이 새 언론사 편집국장이 됐다고 생각해 보자. 내용적으로 저열하고, 정치적으로 분열하며, 무엇보다 사업상 착실하게 망해가는 기존 언론과 차별된 매체가 필요하다는 전망으로 태어난 언론사 편집국장을 맡았다. 다행스럽게도 당신은 각자 능력과 이념은 다르지만 부지런히 기사를 제공하는 기자들과 기술전문가, 디자이너들을 거느리고 있다. 편집국장으로서 어떻게 뉴스를 배열하겠는가.

 

우리나라 매체의 편집권자가 일하기 어려운 까닭이 있다. 일단 전투적 정치인과 그의 열성 지지자들은 언제라도 편파성 시비를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 기업과 유명인은 빨리 내렸으면 하는 기사가 있고, 홍보와 기획사는 지속하기를 바라는 내용물이 있다. 하지만 이 모두가 까다롭고, 성마르고, 소란스러운 이용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뉴스 목록만 보고 집어 던지고, 기사 제목마저 끝까지 읽지 않고 댓글을 달고, 한 번 삐치면 복수에 몰두하는 시민들 말이다. 당신은 편집국장으로서 어떻게 기사를 평가해서 갈아치우겠는가.

 

일관된 편집방침이 있으면 좋다. 성과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 이용자 만족을 극대화하자는 목적-수단 함수를 활용하면 유리하다. 만족은 주관적이어서 계량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니, 만족한 이용자들이 남긴 자취를 기록해 이용량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면 좋겠다. 이 전략의 요점은 이용자가 극우든 극좌든, 젊었든 늙었든, 정보추구자이든 오락향유자이든 내가 제공하는 내용물을 다량으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이용하게 만들면 성공한다는 데 있다.

 

이 전략은 19세기 초 영미권 대중지가 채택한 이래 실패한 적이 없다. 구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21세기 최강 매체로 떠오른 유튜브와 넷플릭스도 같은 전략을 따른다. 과거에 명민하고 촉이 좋은 편집국장이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풀던 고차방정식을 이제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척척 결단할 뿐이다. 편리하게도 이 전략은 정파적 비난을 무력화하고 도덕적 교설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다. 정파적 논란을 피해서 성공하려는 언론사의 편집국장이 채택하는 전략이다.

 

지금 또다시 포털 뉴스에 대한 편파성 논란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포털이 뉴스매체로 기능한 지 어언 수십 년인데, 이 논란의 저열함은 변함이 없다. 포털이 뉴스 매체로서 편집권을 행사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에 대한 고민에 별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신이 오늘 점심에 포털에서 좌경화된 매체의 뉴스가 메인으로 오른 일을 발견하고 화냈다고 가정해 보자. 사정이 그렇게 된 까닭에는 당신과 유사한 종류의 이용자들이 그런 종류의 뉴스를 그 시점에 즐긴다는 행동 자료를 포털 인공지능이 파악했다는 사실이 포함된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과 콘텐츠 이용 성향이 비슷한 이들이 그 뉴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는지 의문에 휩싸일 수도 있고, 애초에 어쩌다 그런 이용자들과 같이 분류가 됐는지 불안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포털 뉴스편집의 논리는 실로 당신이 종합편성 채널을 볼 때마다 전립선 광고를 강제로 보게 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정교하지 않은 포털뉴스의 편집능력을 놓고 조롱할 수 있다. 아니면 분노의 댓글을 남기거나, 유튜브 채널로 옮겨감으로써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다. 바람직하게는 이해관계자를 자처해 포털뉴스의 편집 전략과 방침에 대해 책임 있는 설명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인공지능 편집 정책과 전략의 정치성을 의심하거나 문제 삼을 도리가 없다. 왜냐면 그것은 정파성 논란이 가장 큰 위험요인이 되는 나라에서 매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당신이 포털 언론의 편집국장이 되어도 채택했을 정책과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