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매체의 중심이 급격히 이동했다.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점점 전통적인 주류 매체로부터 멀어져 간다. 젊은 세대는 동일한 콘텐츠를 수용할 때도 기성세대와 다른 경로를 통해서 접한다. 종이 신문을 보는 젊은 세대는 거의 찾기 힘들다. ‘본방사수’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굳이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본방사수라는 말 자체를 거의 쓰지 않는 세상이 됐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 본방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방송시장 안에서도 지상파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종편이나 CJ의 영향력이 커지는 변화가 나타났지만,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플랫폼의 이동이다. 기존 인터넷의 성장세도 여전하지만 모바일의 급격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주문형 비디오(VOD) 시장의 성장세도 주목할 만하다. 웹 드라마가 하나의 영역으로 정착했고, 1인 창작자 시장인 MCN(Multi Channel Network)도 작지만 형성됐다. 하루 종일 종편 낮방송에 매여 ‘본방을 사수’하는 노년 세대와 이동 중에 짧은 콘텐츠에 열중하는 신세대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어중간한 세대로 세대가 분화했다.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매체는 각각 자신들을 소비하는 특정 세대만의 매체로 분화해 나가고, 그 결과 세대 간 소통은 더욱 단절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주류 매체들이 잠재적 소비자인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매체 시장에 진출하거나 진출하려 시도하고, 새로운 매체에 맞춰 콘텐츠의 내용이나 형식을 바꾸려 하고 있다. 매체 이용 행태의 변화는 분명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제한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공간에서, 특정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수용자가 편리한 시간에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에서 기존 매체에 기술적 제약을 마냥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만은 없다.
국내 방송시장 현황_경향DB
또 저널리즘은 독점돼서는 안된다. 새로운 매체가 지니는 기술적 가능성은 사람들이 기존의 방식대로 언론이 생산하는 정보의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더해 전달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유통되는 정보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나누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널리즘의 민주화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양한 측면을 지닌 세상사는 몇 언론인의 취재만으로 그 진실을 다 드러낼 수 없다.
더군다나 사실을 제대로 전달한다고 해서 그 모든 의미를 다 전달한다고도 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도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소비자인 수용자가 적극적인 또 다른 정보 생산자가 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진보다. 새로운 변화는 변화 그 자체로서 인정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기술의 변화 과정에서 이런 변화가 언뜻 불가피해 보이지만 그냥 그 추세를 쫓아가기에는 께름칙한 측면이 있다. 지금의 추세가 적어도 저널리즘의 본질 측면에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전망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저널리즘 실현을 위한 진실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자. 진실은 우선 정확성에 기반을 둔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서 진실이 나올 수 없다. 정확한 사실 확인에는 많은 노력이 수반된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기자가 하루에 수 건의 기사를 생산(?)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하나의 사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여러 기자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거나 수일간의 취재를 거쳐야 비로소 진실의 일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안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1인 미디어가 등장하는 시대에 일견 비대해 보이는 언론 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또 때로는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언론이라는 독특한 매체의 특권(?)이 필요하기도 하다. 기술 진보에 따른 매체 이용의 변화를 보면서도 여전히 기존 매체가 수행해온 기능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생산 과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확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소비의 노력도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촌철살인의 기사를 통해 사안의 본질에 다가설 수도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간과한 채 결론적인 판단만을 접했으면서도 진실에 다가섰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칫 편견을 강화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복잡한 사안은 복잡함 그 자체로 이해하려는 소비의 노력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단일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종합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선택적 정보 접촉이 아닌 매체를 종합적으로 소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들의 매체 이용 변화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민주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기존 매체가 수행해온 저널리즘을 새로운 변화가 다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앞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변화를 대립적인 구도가 아니라 조화롭게 이어주는 접점을 찾아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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