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사건을 취재해서 보도하는 행위 일반을 저널리즘이라 한다. 그러나 저널리즘이라는 용어의 어감은 단순한 현실 전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언론은 그중 일부만을 취사선택하여 전달한다. 또 선택한 사건의 많은 측면 중에서도 일부의 사실만을 전달한다. 이런 언론의 행태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불가피하다. 이렇게 언론이 세상의 일부만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면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세상사에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것도 불가피하다. 여기서 단순 기사 생산 이상인 저널리즘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취사선택 과정이 있기에 언론이 취재한 내용을 왜곡 없이 그대로 전달한다 해도, 언론을 통해서 본 세상은 ‘언론의 시각’에서 본 세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언론의 경향성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경향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언론은 그들의 취사선택을 통해 일정한 시각 또는 여론을 전달하고, 여론들 사이의 소통을 도와서 다양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소위 ‘언론의 경향성 보호’란 이런 의미다. 민주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보도 행위가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는 없다. 언론의 경향성은 그 사회의 발전 수준에 맞아야 한다. 사회의 경향과 유리된 특정 언론인 개인의 시각이 마치 사회 전체 또는 일각의 시각인 양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처럼 언론의 경향성도 사회 변화에 맞춰 변화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그렇지 못해 보인다. 아마도 현실을 발로 뛰며 접하는 언론사 구성원들이 아닌 일부 경영진이나 간부들의 경향이 언론사 경향성을 좌우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사 내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더 나아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언론의 보도는 일반인이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는 행위와 수준이 달라야 한다. 일반인들이 사랑방에서 주고받는 잡담 수준의 내용을 언론이 지향하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기사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기자는 관찰한 것이 전부를 의미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관찰한 것에 경중이 있음을 따져야 하며, 전달한 것이 어떤 시각으로 읽힐지를 고민해야 한다. 저널리즘에 요구되는 신중함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그렇지 못하다.
북·미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인사하는 북한의 노광철 인민무력상에게 거수경례로 답하려다가 노광철이 동시에 악수하려 손을 내미는 바람에 트럼프가 노광철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종의 해프닝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부 미국의 언론과 매파들에게서 논란이 됐다. 트럼프가 노광철을 우러러 봐서 거수경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럼프가 양국의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거수경례로 인사하는 적국의 군인에게 거수경례로 대응하는 것을 정말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미국의 매파나 미국의 언론들은 떠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 언론이 그걸 기사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굳이 미국의 언론 보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우리 언론은 의도는 무엇일까? 미국 언론의 보도는 다 가치가 있다고 보는 사대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북·미 회담의 성과에 미국 내 반대 여론이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라 해석 가능하다.
또 다른 사례는 김정은 헤어스타일 조롱 방송이다. 조선일보는 <중력을 거스르는 사다리꼴 머리…‘김정은 헤어스타일’>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공덕동 한 미용실 원장의 “얼굴이 커 보이는데도 그런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건 집요하고 극단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듯하다”는 말을 전문가의 의견인 양 인용하는 기사의 의도, 즉 경향성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이 내용에 준해서 무려 8분이나 김정은 헤어스타일을 검정전화기, ‘만화 캐릭터 스펀지 밥’이라고 부르며 조롱한 ‘TV조선’의 방송 수준은 더욱 문제다.
시민언론운동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시행하는 ‘시민 방송심의위원회’에 이 프로그램이 안건으로 올랐다. 그리고 ‘프로그램 중지·수정·정정’이 2130명(56%), ‘관계자 징계’ 825명(22%), ‘경고’ 505명(13%), ‘주의’ 265명(7%) 등 법정 제재를 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98%에 달했다. 언론의 수준이 시민들의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다.
동일한 사안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언론의 경향성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경향성은 여론을 파악하고 전달하여 진실을 드러내려는 언론의 행위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결과이다. 편견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사회 여론과 동떨어지거나, 진실을 희화화하는 것까지 언론의 경향성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언론의 위기는 언론 신뢰성의 하락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언론은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더욱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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