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다.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끝내며, 본인이 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하다 판단했다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아마도 자신이 물러나니 이제 소위 ‘조국’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고 검찰개혁 등 국정에 집중하기를 바란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국이 사라지니 문재인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아 광화문 집회는 진화·발전(?)하고,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의 핵심 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반대라는 패를 전면에 내세워 흔들었다. 의견이 다르고 반대할 수 있다. 의견이 다르니 장단점을 비교·검토해 바람직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라고 국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외로 나갔다. 조국 전 장관이 갈등의 중심인 것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략적 목적에서 만들어낸 것이든 아니든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단지 성숙한 사회라면 온 국민이 길거리에 나가 외치지 않고도 갈등을 적절하게 해소하는 체계가 작동해야 할 텐데 그게 없다. 그게 국회만의 문제일까?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10번째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미 두 달여에 걸쳐 보여줬지만, 민주주의 사회가 작동하기 위한 체계의 하나인 우리 언론도 공론장 기능을 못했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스스로 붕괴시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사회 구성원인 주권자의 의견을 모아서 운영하는 정치체제다. 따라서 구성원의 올바른 판단은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나타내는 척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올바른 판단은 신뢰할 만한 정보의 획득에 좌우된다. 우리 언론은 지난 두 달 동안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했을까? 기자들은 자신들이 전달하는 의혹이나 정보가 그들 스스로의 ‘취재’를 통해 확보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였다 자신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기사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산물이었다. 그것도 취재라면 취재지만 진정한 의미의 취재는 없었다.
그 따옴표 저널리즘의 절정이 소위 ‘검찰발’이라는 기사였다. 확정되지 않은 내용에서부터 의미없는 사소한 내용까지 기사화되고 그 결과 국민들 사이에 갈등만 증폭시켰다.
10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주민 의원이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기사들이 매우 많이 쏟아졌다고 지적하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사 보안 각서도 받았고 100%는 아니지만 수사 내용이 외부로 새는 것을 틀어막았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수사가 진척됐음에도 수사해서 나온 게 없다는 외부의 시각까지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면 ‘검찰발’로 나온 많은 기사들은 무엇인가? 그게 검찰 제공 정보가 아니라 기자들의 추론에 불과했나? 만약 검찰이 준 정보였다면 검찰은 검찰총장이 보안 각서까지 받으며 수사 내용이 외부로 새지 못하게 한 지시를 어긴 검찰 내부를 조사·징계해야 할 것이며, 기자들은 수사 핵심내용에는 접근도 못하고 검찰이 흘린 부스러기 정보를 가지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항의하거나 스스로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또 만약 기자가 추론한 것이라면 검찰은 검찰이 주지 않은 정보를 ‘검찰발’ 기사라고 내보낸 기자들에게 항의하거나 경고해야 할 것이고, 기자들은 시민들에게 사죄해야 마땅하다.
사실 검찰이 정보를 제공하면 추가 취재를 통해 진실을 검증하기보다는 그냥 옮겨 적기 바쁜 우리의 취재 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재원이 제공하는 정보 없이 기사가 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검증 없이 주로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에 의존한 기사 생산 관행은 옳지 않다. 이런 관행을 야기한 것이 출입처 제도다. 그런데 출입처를 통해 기자와 취재원이 유착하면, 취재원의 의도에 기자가 농락당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그 정점에 ‘검찰발’ 기사가 있는 것이다. 조국 장관이 사퇴했으니 이제 ‘검찰발’ 기사가 줄어들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따옴표 기사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당장 공수처를 둘러싼 기사에서 공수처를 둘러싼 다양한 주장들을 비교·검토하는 기사는 없고, 단지 찬반 진영의 결론적 주장들을 전달하는 기사들만 보인다. 이런 기사들은 다시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다. 이제는 취재원, 출입처에 의존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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