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조국사태’를 지나며, 공중은 언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언론에 대해 환멸하고 혐오하는 데에도 지쳤다할까. 기자를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해 보았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탐구심이 강한 시민 중에 도대체 우리 언론은 왜 이러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들도 있다.
언론학자 박영흠이 지난 10월25일 언론정보학회에서 주장한 바가 시사적이다. 그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관행이 문제라고 했다. 사안별로 ‘야마’를 잡아서 몰아치듯이 보도하고, 출입처에서 흘리는 말을 따로 검토하지 않고 ‘받아쓰기’하다 보면, 언제라도 ‘조국보도’와 같은 혼란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결국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누적한 실천과 오래된 생각들,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조직과 제도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보도와 세월호 보도를 거치고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언론은 유구하다. 최순실 보도와 같은 성취도 그렇다. 관행대로 하다 보니, 구르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게 된 결과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의 반복된 실패와 우연한 성공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나는 한때 관행을 문제삼아 기자와 발행인을 달래고 설득해야 소용이 없다고 보았다. 틀 속에서 편안한 사람들에게 그 틀을 수선하자고 말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보상을 내세워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혁신으로 자료수집, 분석, 글쓰기까지 많은 관행을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승냥이를 피하려니 호랑이가 나타난다. 디지털 전환이란 곧 편집국 내의 취재보도 공정을 개선하는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오래된 편집자를 대체해서 기획자와 분석가를 고용해야 한다. 그래야 출입처 취재를 대신하는 자료조사와 분석을 도입할 수 있고, 하루짜리 기사쓰기가 아닌 이어가며 파고드는 연재물을 내놓을 수 있다. 실제로 인적 구조조정 없이 디지털 혁신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경직된 고용시장을 가진 나라이며,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기자들이 내심 면구스러워하면서도, 피할 수 없어 하는 일들이 있다. 한 조각의 사실을 얻어다가 하루짜리 기사를 써야 하는 일이 그렇다. 1초만 빨라도 단독이라고 쓰는 일도 그렇다. 사실에 대한 검증기사가 아니면서도 ‘팩트 체크’라며 쓰는 일도 그렇다. 이런 관행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 가히 도그마라 불러야 마땅한, 한국 언론에 유난스러운 기사쓰기 원칙이다.
나는 이를 ‘사실 충분성의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에 부합한 내용이면 뉴스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얼핏 이 원칙은 참으로 들리지만, 실은 참이든 아니든 사소하며, 다른 관행들과 결합해서 치명적 실패를 낳는다. ‘조국사태’를 보도하는 양태가 대체로 그랬다. 조각난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보도하면서, 당사자의 행동이니까 사실이고, 검찰에서 나온 정보니까 사실이고, 관계자가 어쨌든 말한 것이니 사실이고, 다른 언론이 이미 썼으니까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충분성의 원칙’을 도그마처럼 따른 결과다.
그러나 기자들도 알고 있듯이, 한 사건의 범위 내에 사실들은 차고 넘친다. 많은 사실 중에 일부만 뉴스의 재료가 된다. 맥락과 관점에 따라서 사실들의 가치가 달라지며, 이 가치를 저울질하는 자가 곧 기자다. 사실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뉴스가 된 사실만이 가치를 갖는다. 그 가치를 노려서 쓰는 자가 기자다.
따라서 적어도 뉴스에서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예컨대 아무리 사실에 충실한 기사라 해도 얼마든지 불공정하고 추악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공정하고 숭고한 뉴스라 해도 의심스러운 사실 주장을 포함할 수 있다. 도대체 모를 수 없는 이 요점을 모른 체하면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사실을 ‘팩트’라 고쳐 부르며 신성시하기도 한다. 이 도그마를 직시하고 이로부터 빠져 나오지 않는 한, 한국 언론에 개혁은 없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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