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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칼럼]파업 기자들의 팟캐스트

황용석 |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방송3사가 동시에 파업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파업은 보도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언론보도에 대한 경영진의 통제와 공정성 문제에 대해 3사의 최고경영자들은 묵묵부답이다. 이번 방송사 파업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주류 미디어의 노조가 대안 미디어인 팟캐스팅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2일자 아이튠즈의 인기 비디오 팟캐스트 순위를 보면 1위는 KBS노조의 ‘파업채널 리셋KBS’이며, 2위는 YTN해직언론인이 운영하는 ‘뉴스타파’이다. 3위는 MBC노조의 파업채널인 ‘파업채널M’이다. 주류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만든 팟캐스트가 1위부터 3위를 차지한 것이다. 리셋KBS는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단독 보도해 여론의 반향을 이끌고 있다.

MBC·KBS·YTN 등 3개 방송사 공동파업 콘서트 I 출처:경향DB


이런 현상을 <나는 꼼수다>로부터 시작된 정치 팟캐스팅의 열풍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보다 복잡한 속내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및 스마트미디어 환경에서 기자들이 직면하는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나꼼수 열풍은 프로그램 포맷이나 전달방식보다 그 속에 담긴 콘텐츠 즉 ‘새로운 사실로서 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꼼수에서 다룬 내용들은 주요 언론사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기자들은 데스크에게 정보보고라는 형식으로 기사화되지 않은 많은 사안과 배경정보들을 보고하는데 어쩌면, 내곡동 사저와 같은 중요한 사안들도 그 수많은 파일 속의 하나로 묻혀 있었을지 모른다. 개방적 여론 환경에서 뉴스룸 내에서의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나꼼수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보여준 것이다.

방송사 노조의 팟캐스팅은 스마트미디어 환경에서 기자의 사회적 역할위기와 직업적 위기가 겹친 결과의 반작용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고시’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지만 현실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10년 전 언론노조의 의뢰로 기자노동을 분석한 적이 있다. 2주 동안 15분 간격으로 하루동안의 일을 기록하는 다이어리조사방식으로 분석했는데, 조사결과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당시 결과를 보면, 기자노동시간은 매우 길고 업무는 반복적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고, 직업만족도도 낮았다. 근무연차가 늘어날수록 스스로 시대에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이 자신의 노동이 창의적이지 않으며 자기계발과 동떨어져 있고 노동과정에 대한 자기통제력도 낮다고 답했다. 그나마 그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언론인이 갖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상황은 더 악화되어 지금은 이마저도 무너지고 있다. 인터넷에 맞서기 위해 기자 한명이 처리하는 기사건수가 늘어나면서 취재라기보다는 ‘기사구성’에 가깝게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경제적, 시간적 압박으로 탐사보도는 갈수록 실종되고 있다. ‘탐정’으로서의 기자 역할은 줄고 ‘받아 적고 카피하는’ 수동적 기자 역할이 늘어나고 있다. 속도경쟁에 내몰려 검증되지 않은 ‘베타뉴스’를 쏟아내기도 한다. 기자가 전문직인지 아니면 일반 직장인인지의 논쟁은 미디어 사회학의 중요한 이슈이다. 그 둘의 차이점은 업무의 자율성과 통제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 있다. 지금 우려스러운 것은 기자들이 단순한 ‘봉급쟁이로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이번 파업을 직업사회학적 관점에서 깊이 들여다보면, 공정성 훼손에 따른 언론의 역할 위기와 직업의 위기가 중첩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송3사 경영자들은 이번 파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