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석 | 건국대 교수·언론홍보대학원
스티브 잡스의 부음 소식은 전 세계 신문사에 가장 큰 뉴스거리의 하나였다. 100개 이상의 영어권 신문사들이 1면에 그의 사망소식을 특집으로 게재했다고 한다. 잡스와 신문의 관계는 모호한 동반자 관계였다. 그는 늘 올드미디어를 새롭게 혁신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잡스가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신문발행인들이었을 것이다. 제프 손더만이 포인터인스티튜트 블로그에 쓴 글에 따르면, 88%의 미국 신문사들이 아이폰앱을 개발했다.
그러나 아이패드가 신문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반가운 소식은 없다. 머독만이 유일하게 아이패드용 뉴스를 실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잡스의 기기들이 신문사들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다.
공교롭게도 잡스는 2010년이면 인쇄신문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말이 진지하게 나온 것은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신문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단면일 수 있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의 발행인인 크로비츠(L Gordon Crovitz)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애플 본사를 방문했다. 그가 방문한 목적은 애플의 광고를 자신의 신문에 수주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잡스는 WSJ.com(월스트리트저널의 온라인사이트)의 애독자였기 때문에 신문에도 호의적일 것이라 기대한 크로비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독자들이 얼마나 광고할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했다. 열심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잡스는 자신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인쇄신문에 광고를 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 단 하나의 이유로 잡스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윤전기로 신문용지에 인쇄한 것이기 때문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고 했다. 잡스는 월스트리트저널이 광택지에 신문을 인쇄한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광고를 게재하겠다고 말했다. 잡스의 이런 주문은 이후 월스트리트저널의 자매지인 WSJ매거진의 초기 콘셉트로 나타났다.
잡스는 그들과 광고이야기를 하는 대신 사람들이 어떻게 뉴스를 소비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것을 원했다고 한다. 잡스는 크로비츠와의 대화에서 WSJ.com이 자신이 북마크한 중요한 웹사이트의 하나이지만, 5년 안에 인쇄신문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미 잡스가 설정한 데드라인은 지났다. 인쇄신문이 사라지기 전에 잡스가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그의 예견은 미디어에 대한 진단이라기보다는 신문이라는 올드미디어에 대한 도발적인 메시지이자 경고였을 것이다.
잡스는 인쇄신문의 미래를 설명하면서 크로비치에게 이런 예를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개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막대를 던져서 물어오게 하는 놀이를 좋아한다면서, 이런 놀이가 계속되어지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암시를 던진 잡스의 이 말은 신문에 비수 같은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비관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라지는 것을 통해 재창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잡스의 상품은 평생 대안문화로서 상품화되었다. 그는 기존 질서를 해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절에 그의 개인용 컴퓨터가 불러온 변화가 이를 말해준다.
모든 것이 유한하지만, 해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두 가지 명제를 잡스가 제시했다. 첫째는, 사람들이 정보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탐구하라는 것이다. 잡스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품을 소비하는지를 고민해서 이를 올드미디어의 변화에 적용하고자 했다. 잡스는 일간신문들이 사람들이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에 맞추어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정치와 같은 부가적인 방식이 아니라 상품 그 자체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그는 워싱턴 정치와도 거리를 둔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회사 직원이 로비를 하거나 청문회에 나가서 변론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오직 상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국 정답은 신문을 소비할 독자에게 있음을 뜻한다.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디어 칼럼]파업 기자들의 팟캐스트 (0) | 2012.04.04 |
---|---|
[칼럼]SNS 때문에 졌을까 (1) | 2011.11.07 |
[칼럼]안철수와 '나꼼수'의 역설 (7) | 2011.09.07 |
[칼럼]KBS가 그랬을 리 없다 (1) | 2011.07.20 |
[칼럼]기자들은 '행파라치'에게 배우라 (0) | 2011.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