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이 |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
18일자 1면에 ‘안타까운 죽음 언제까지’라는 제목으로 빈 책상 위에 국화가 한 다발 놓여있는 사진이 실렸다.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주 중학생의 장례식이 있던 날 교실 풍경이었다. 같은 날 사회면에는 안동 여중생과 카이스트 대학생의 자살 소식이 나란히 보도됐다. 16일과 17일 이틀 사이에 3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교육현실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문제를 해결할 방향조차 찾지 못한 것 같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1년 4월 13일 (경향신문DB)
경향신문은 <10대가 아프다>라는 심층기획 보도를 통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면서 교육공동체의 모순을 드러내고 해결점을 모색했다. 이후에도 학교폭력 문제 등 교육현장 전반에 관한 논란을 계속해서 전달했다. 지난 21일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잘못된 학교폭력 통계를 지적하며 학교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학교폭력 엉터리 통계로 어쩌란 말이냐” 6면) 기사는 수치공개를 강행한 교과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함께 전했다. 24일 실린 <동문서답에 그친 ‘이주호식 토크 콘서트’> 기사는 교과부 장관의 강연에 참가한 일선 교장들이 문제제기한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폭력학교’라고 낙인찍을 위험이 있는 학교폭력 순위공개의 정당성에 관해 다룬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동안 경향이 학교폭력 보도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반대로 문제 전달에만 치중해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26일자 칼럼 <성적서열 폭력서열>이 “이번 공개로 전국 초·중·고는 성적서열에 이어 ‘폭력서열’을 새로 얻었다”며 폭력학교 순위 공개를 비판했다.
지난 23일자 사회면 하단에 실린 <청소년 백인 성명 “찍어내는 교육반대…입시경쟁 거부” 11면> 기사에 눈길이 갔다. 희망의 우리학교 만들기 소속 청소년들이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내용이다. 거의 대부분의 다른 기성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은 것과는 반대로 경향은 청소년들의 입시경쟁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높은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다만 분량의 한계 때문인지 기자회견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경향이 <10대가 아프다> 기획에서 보여준 것처럼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 경쟁교육의 심각성을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전달해줬다면 그 울림이 더 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학벌주의란 거대한 현대판 신분제도에 대한 개혁 의지 없이 기술적 입시제도 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경향의 이런 학벌주의 개혁 논의에 동의하지만 과연 한국사회가 학벌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테다. 25일자 칼럼 <어른들이 답해야 한다>는 “겉으로는 학벌주의를 개탄해도 내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 나와 기득적 삶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십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좋은 학벌을 가지기 위한 입시전쟁은 끝이 없을 것 같다.
경향신문은 교육공동체의 주요 문제점을 ‘입시위주 교육’으로 보고 그 바탕에는 ‘현대판 신분제도 학벌주의’가 있다고 분석했다고 생각한다. 학벌에 목숨 거는 사회 전체 구조를 바꿔야 함은 자명하지만 그 길은 요원해 보인다. 경향이 학벌주의를 개혁하자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우리 교육 공동체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바탕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같은 맥락에서 24일자 교육면에 실린 <놀이는 아이를 아이답게 하는 인성교육의 출발> <녹색가게, 경제·환경교육에 우정은 ‘덤’>과 같은 기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입시위주의 경쟁을 교육의 중심에 놓은 채 교육면 대부분을 입시정보와 학원정보 전달에 할애하는 다른 언론과 경향이 차별화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다만 이런 대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더 넓게 보고 미취학 아동부터 10대 후반의 청소년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사례들을 많이 전해주면 좋겠다.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의 국제비교’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65.98점(OECD 평균 100점 기준)으로 OECD 23개국 중 가장 낮은 점수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조사에서 3회째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더 이상 우리 교육공동체의 병폐들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청소년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중단하시겠습니까”라고 외친다. 언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교육이 이렇게 된 데는 오랜 시간 입시경쟁교육을 부추기고 그 문제점을 외면한 언론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판 신분제도 ‘학벌’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경향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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