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은 경향신문 창간 64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창간 의제로 ‘시민권력’을 뽑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의 가능성을 한껏 부각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창간일에 맞춰 온라인을 대대적으로 개편했습니다.
 사내에서는 신문사의 저널리즘과 소셜네트워크와 소통, 결합이 중요 화두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이신문이 그런 건 아닙니다. 보수 언론은 소셜네트워크 확산에 대해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몇 개 기사를 보시죠.
 
 같은날인 10월6일자 <동아일보> 1면 제목은 ‘북, 심리전 확대... 스마트폰 침투’입니다. 북한을 경계하는 기사는 하루이틀은 아닌데, 주목할 것은 ‘스마트폰’입니다. 기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친북 사이트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최근에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이트를 대남 선전물 유포 채널로 본격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입니다.

 2면에도 ‘트위터가 사회변혁 선봉대? 오합지졸 네트워크에 불과’라는 기사가 눈에 띄네요. <아웃라이어> 작가 맬컴 글래드 웰이 <뉴요커>에 기고한 ‘작은 변화’라는 글을 전하는 일종의 외신 기사입니다. 맬컴은 “소셜 미디어의 등장이 사회적 행동주의를 촉진해 사회변혁이나 혁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은 과장됐다.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사회참여는) 큰 위험을 질 필요가 없고, 개인적인 희생이나 비용을 감수할 필요도 없는 조건에서만 부담 없이 참여하는 정도의 결속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사는 반발을 소개하면서도 “‘스크린 뒤에 익명으로 숨은 누리꾼에게는 변혁의 힘이 없다’며 공감하는 의견이 맞서면서 논란이 뜨겁다”로 끝납니다.

 <조선일보>도 트위터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 보입니다.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 대학의 신입생이 클레멘티라는 학생이 동성 애인과 성관계를 갖는 모습이 웹캠을 통해 인터넷에 중계된 뒤 자살한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룸메이트가 트위터로 클레멘티의 성관계 글을 남기고, 리트윗되면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조선일보는 단정적 제목을 뽑았습니다. ‘인터넷·트위터가 美 대학 신입생을 죽였다’입니다. “타인에 의한 개인정보 공개, 사생활 침해, 사이버불링(인터넷을 통한 괴롭힘) 등의 문제는 ‘사회적 테러’로서 피해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분석도 달았습니다. 

 경향신문은요? 신문 지면에 들어가지는 않고 온라인에만 오른 이 외신 기사 제목은 ‘기숙사 섹스 몰카 공개되자 대학생 투신자살’입니다. 낚시성이 있는, 크게 자랑할 만한 제목은 아니었지요. 이 기사도 트위터의 문제는 다루고 있습니다만, 공격적이고 단정적으로 트위터 해악론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보수언론의 소셜네트워크 관련 보도는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는 ‘악의 축’의 ‘악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음을 부각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문사의 논조나 보도에 대해 하나하나 가타부타 하는 게 민망하지만, 미디어 담당 기자로서 매체비평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 영역입니다. 왜 보수언론은 소셜네트워크를 경계하고, 적대감을 드러낼까요?

 인터넷 공포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엄밀히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시민들이 정치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반감과 공포지요.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안티 조선을 비롯한 시민 주체의 언론 운동의 터전은 인터넷입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키워드는 ‘인터넷’이었습니다. 당시 노사모 홈페이지, 얼마나 뜨거웠던가요? 보수언론 보도는 인터넷 공간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선거 당일 조선일보의 사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사설은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냈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 촉발도 인터넷의 한 카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가깝게는 6.2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로 결집한 시민은 한나라당 대승을 점쳤던 기성언론을 무색케 했습니다.
 
 다시, 보수언론의 태도는 시민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를 매개로 권력, 그러니까 주권을 행사하는 데 대한 반감이자 공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보도 내용 중 한 구절을 빌자면, ‘변혁의 힘’에 대한 역설적 우려지요. 최근까지도 인터넷 해악에 관한 보수언론의 보도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트위터란 매체, 도구는 더 막강하죠. 네트워크망이 더 촘촘해졌고, 정보의 전달 확산 속도도 훨씬 빠릅니다. 촛불집회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도 노트북(인터넷)과 휴대전화의 힘이 주목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비교해보면, 당시에는 유무선 통신망이 있어야 했고, 노트북과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옛날 이야기가 되버린 거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찍어 올리면 그만입니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200만입니다. 지금의 매체 발달 속도를 보면, 다음 대선과 총선 때 가입자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입자는 느는데, 인터넷 담론과 마찬가지로 트위터 담론과 정보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은 보수언론에 적대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 입장에서는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반감 같은 것도 크리라고 봅니다. 안티조중동, 인터넷에서 정보를 교환해 회사 앞마당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가는 네티즌(아마 요즘은 트위터리안이겠죠)이 곱게 보일까요. 감정적 요소도 무시못할 것 같습니다. 조선비즈가 트위터를 시작했다가, 역풍을 맞은 일도 있죠.

 부작용은요? 소셜네트워크의 부작용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작은 사례지만, 최근 경향신문 사례도 있지요, 어제인가 어느 술집 주인 분이 술집에서 소란을 피운 게 경향신문 기자들 같다는 트윗을 날렸습니다. 이 주인은 경향신문 기자가 아니란 걸 알고 빨리 정정 트윗을 올리기도 하셨습니다. 소란을 당연히 피워선 안되지만 기자라서 술자리 같은 사생활이 노출되는 건 과히 편치 않은 노릇이죠.
 
 부정확하거나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정보들이 확산되고, 때로 사생활에 관한 트윗이 오르지만, 다수도 아니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자체를 악의 도구, 악의 소굴로 규정할 것은 아니란 거지요. 한국 상황을 보면, 오히려 기성 미디어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의견, 의제가 공론화되고(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이를 ‘의제의 패자부활전’으로 정리하시더군요), 실속 있는 정보가 확산되고,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고 뜻 있게 공유하는 게 지금의 소셜네트워크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가 지고지선, 절대 선은 아니라고 봅니다. 완전무결한 존재도 분명 아니지요. 양면이 있고, 여러 측면이 있는 거지요. 집단지성, 대중지성의 사례로 거론되는데, 황우석 사건 때 브릭처럼 집단지성 역할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에 인터넷은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올랐지요. 최진실 등등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타블로를 위로하면서 “부당한 인터넷 마녀사냥”이란 표현을 썼지요. 아마 BBK동영상 등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간 걸 마녀사냥으로 여기는 거 같네요. 그런데, 그거 팩트 아니었나요. 

경향신문자료사진



 안 좋은 점만 ‘매체’ 자체의 문제로 환원하는 게 문제이지요. 모든 잘못과 부정이 인터넷 때문이라는 인터넷 환원론 말입니다. 그렇다면 올드미디어인 종이신문은 어떤가요? 군사독재 때부터 지금까지 종이신문을 보십시오. 종이 자체는 선인가요? 다른 신문은 예를 들것 없이, 경향신문도 87 민주화 항쟁 때 서울역 앞에서 불태워졌습니다. 보도에 분노한 시민들이 태운 겁니다. 그렇다고, ‘종이’라는 매체만의 문제는 아니죠. 종이 매체 중엔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올드미디어인 방송을 보면 어떻습니까. 땡전 뉴스가 20여년 전 일입니다. KBS의 ‘아첨방송’이 지지난 주 일입니다. 친정부에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송 프로그램이 범람합니다.  영상으로 만든 일방적 이데올로기가 수백만 시청자들에게 주입되기도 하죠. 하지만, 모든 게 방송이란 전파 매체 탓이라고 환원할 건 아니지요. 재벌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연일 나오지만, 재벌을 비판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일방향과 쌍방향의 차이, 확산력 등등은 차이는 있습니다만,  올드미디어건 뉴미디어건 매체 자체는 천사도 악마도 아니라고 봅니다. 사용자, 수용자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죠.

 재미있는 요소는 있어요. 그렇다고 보수언론이 소셜네트워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동아일보>는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논조가 분명해진 듯한데, <조선일보>는 모호한 기사들이 나옵니다. 트위터가 음란 매춘 정보를 옮긴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마냥 부정적인 뉴스만 다루는 건 아닙니다. 지난 10월5일자 기자수첩 제목은 ‘배추와 트위터’입니다. 농촌 총각이 트위터에 고랭지 배추를 산지가격 수준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일종의 소셜네트워크 미담 사례로 다룹니다. 보수언론은 정부의 트위터 홍보 활용 등등에 대한 기사를 내곤 합니다.

보수언론이 뉴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에 바라는 건, 시장, 산업의 발전을 위한 시장정보, 미담 전파의 매개로 존재하란 겁니다. 반상회나 동호회 소식지 같은 수준 말이죠.
트위터 인터넷을 통해 태안에 대규모 자원봉사하러 가는 건 좋지만, 불량제품에 대하 항의댓글까지는 괜찮지만, 선거나 정치 따위엔 집단적으로 개입해 '결집'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민을 권력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주의, 권위주의라고 봐야죠. 법원이 트위터를 이용한 선거를 유죄로 판단했고, 선관위도 그 기준에 맞춰 단속 방침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 소셜네크워크는 다시 이슈가 될 겁니다. 여권 입장에서 멀게는 2002 대선, 가깝게는 6.2지방선거 패배가 인터넷, 트위터 때문이라는 '팩트' 분석이 나와 있는 이상 거저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소셜네트워크에 연결된 시민들이 국가와 기득권의 역공과 방어막에 어떻게 대응할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김종목 기자 jomo@khan.co.kr, @jomosamo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