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3대 세습 입장을 둘러싼 논쟁은 분당 이전 한지붕 아래 있던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계파간 갈등과 논쟁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핵개발, 인권 등 북한 발 이슈를 둘러싼 남한 내 ‘두 개의 북한(시선)’ 문제입니다. 이 갈등과 논쟁은 2006년 수면 위로 떠올라 2007년 대선 전후 극에 이르렀고, 결국 분당하게 됩니다. 당시 경향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민노당 내 북한 관련 논쟁, 갈등의 양상을 들여다봅니다.
(참고로 1980년대 이후 NL-PD 구도의 진보정치운동 흐름과 주요 인물은 다음 기사를 보면 쉽고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 기사보기)
최근 경향신문 절독을 통지한 민노당 울산시당의 김창현 위원장은 2008년 1월1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면에 ‘종북주의 탓할때 아니다 - 민노당 광야에 서라’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당시 칼럼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북 핵 실험 당시 (중략) 민주노동당은 지금의 정세는 전쟁인가, 평화냐의 갈림길임을 직시하고 이런 상황을 몰고 온 미국의 책임을 분명하게 제기한 것이다. (중략) 일심회 사건의 근본은 시대착오적인 보안법 체제가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사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그가 속한 세력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굴복하는 나약성의 표현이요, 오도된 합법주의인 것이다.
(중략) 민주노동당은 남한식 자본주의 혹은 북한식 사회주의로 흡수통일하는 것을 반대하고 상호 체제와 제도를 인정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한다. 북의 현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왜 종북주의인가? 그렇다면 북의 체제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며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있지도 않은 ‘종북주의 척결’처럼 색깔론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당의 대선 평가와 향후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칼럼에도 나와 있지만, 북핵실험, 일심회 사건, 북한체제 인정 문제 중에서 당내 갈등이 심화됐던 사건은 2006년 북핵실험입니다. 2006년 10월20일자 같은 날 실린, ‘정치권 북핵 ‘속앓이’ - 몸살앓는 민주노동당, 민족 먼저냐 반핵 먼저냐...’라는 제하의 기사입니다.
19일 당 홈페이지의 당원토론방도 이 문제로 들끓었다. "이용대 의장은 사퇴해야 한다" "당비 납부를 거부하겠다"는 글과 함께 "지도부를 흔드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의장 옹호 글도 잇따랐다. (중략) 성명에는 정책연구원 35명 중 27명이 서명했다. 정책연구원들은 "당의 강령은 비록 ‘자위력’으로서라도 핵무장을 하는 것에 반대할 뿐 아니라 소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자력 발전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략) 한 당직자는 "문제는 상호간 절충이나 양보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데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이혼’ 사유로 충분하다며 (NL과 PD 진영이) 갈라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말했다.
민노당은 지난 15일 중앙위원회의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분명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문구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 것이다. 상당수 중앙위원들이 ‘유감’을 ‘반대’로 분명히 할 것을 주장했으나 표결 끝에 거부됐다. 결국 문구는 "미국과 북한의 대결이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어진 데 대해 유감"이라는 내용으로 약화됐다. "이게 진보정당이야. 이 XXX들아"라는 폭언이 터져나왔다.
앞서 10월9일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현한다”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행동 및 이를 유도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에도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대변인 논평이 나간 뒤 벌어진 논쟁이지요. 참고로, 박 대변인은 분당 사태 때 탈당해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옮깁니다. PD계열이었지요.
북핵실험 대응을 두고 계파 갈등을 빚었던 민노당은 다음달 참여정부의 유엔북한인권결의안 찬성 입장 때문에 다시 논쟁이 벌어집니다.
당시 민노당 대변인의 공식 논평을 최고위원과 자주평화통일위원장이 부인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2006년 11월18일자 “민노 북 인권안으로 또 ‘시끌’, NL ‘찬성 철회’...PD ‘철없는 사람들’” 기사 내용입니다.
박대변인과 권영길 의원단대표는 16일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이 문제로 남북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은진 최고위원 등은 "어제 나간 논평들 때문에 언론에서 조금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있었다"며 대북 인권결의안 반대가 당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한반도에 긴장과 위기를 불러올 결의안 찬성 입장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PD측의 한 당직자는 "철 없는 사람들"이라며 "대북 인권결의안을 추진하는 주된 세력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연합(EU)이고, 북한 인권이 인류보편적 시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NL측을 비판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NL-PD 갈등은 2007 선거 즈음 최고조에 이릅니다.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민노동 김형탁 대변인이 전격 사퇴합니다. 2007년 11월16일자 관련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다음해 있을 분당의 징후가 뚜렷해집니다. 대선 슬로건 중 하나인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문제가 됐습니다.
한 당직자는 "권후보의 경선 승리에 핵심적 역할을 한 특정 정파(NL)의 자기만족을 위한 선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략) 조소장은 "시대와 동떨어진 잘못된 노선을 가진 다수 정파(NL)와 편가르기만 익숙한 좌파(PD) 모두 변해야 한다"며 "당의 근본적 혁신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2008년 1월14일자 기사입니다. 민노당 탈당자들이 나옵니다.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가 굴러갔지만, 분당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자주파는 평등파가 제기한 ‘종북주의’나 ‘패권주의’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평등파의 중복주의 청산 요구는 중세식 마녀사냥이자 매카시즘"이라며 "자주파가 북한식 사회주의로 통일과 북한 정권 보위를 임무로 하고 있다는 주장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를 이해하려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자주파는 이미 심상정 비대위원장이 "종북주의에 대해 성역과 편견 없이 평가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강경 자주파는 "심상정 비대위를 지켜보겠지만 있지도 않은 종북주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해선 안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난파위기에서 출범한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는 이후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 인사들에 대한 제명을 포함한 ‘북한 편향’ 요소 청산과 자주파의 패권주의를 일소하는 혁신안을 내놓습니다. 강경안이었지요.
자주파의 반발도 거셌습니다. 2월1일 임시 당 대회에서 강경 자주파는 비대위 혁신안을 반대했고, 강경 평등파인 진보신당파 핵심인 조승수 전 의원과 김형탁 전 대변인은 공식 탈당했습니다.
2월2일자 기사 내용입니다.
자주파의 공세도 거셌다.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다수파였기 때문에 자주파의 패권을 지적한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도 "비대위 혁신안은 분열주의자인 소수파의 협박에 굴복해 종북주의 척결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심상정 대표가 2008년 2월3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임시 당 대회에서 혁신안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다.
양 측 주장은 좁혀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2월3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민노당 임시 당 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은 자주파의 반대로 부결됩니다. 이후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창당합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합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지금 당 대 당으로 전면적으로 세습 관련 논쟁을 벌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논쟁과 북한 담론에 대한 주요 찬성, 반대 축은 NL-PD 투쟁에 기반해 있다고 합니다. 2012 대선과 관련, 야권 연대, 앞서 진보정당 연합이라는 '주어진' 정치공학을 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종석씨는 2007년 11월22일 한국일보 ‘고종석 칼럼’에 ‘민주노동당과 17대 대선’이란 제목의 글을 게재합니다. 대선이 끝난 데다, 분당된 상태에서 고씨의 '과거' 칼럼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민노당을 지금의 진보정당으로 대입해 읽으면, 참고 상황은 되어보입니다.
의원 개개인의 성실한 의정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내의 고질적 정파 싸움과 민주주의 문화의 부재는 이 정당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중략)
게다가, 당내 경선에서 자주파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권영길 후보는 소위 ‘코리아연방공화국’론을 계속 치켜듦으로써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상식적 진보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한 세력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라는 점을 진보 유권자들이 충분히 이해한다면, 권영길 후보와 민노당에도 희망은 있다. 권영길씨와 민노당은 민족지상주의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민주의를 대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민노당은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삼성재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는 제도권 정치세력이다. 재벌-관료 동맹의 악취가 견디기 힘든 유권자라면,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미흡하나마 민노당이라는 대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을 쏟았던 중도우파 ‘개혁’ 세력에게 교훈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정리 김종목 기자 jomo@khan.co.kr, @jomosamo
'=====지난 시리즈===== > 김종목의 미디어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80년대를 재현하는 G20캠페인 (0) | 2010.11.11 |
---|---|
보수언론과 MB의 소셜네트워크, 인터넷 경계령 (0) | 2010.10.19 |
'종합편성' 대학 준비하는 수험생 이야기-종편과 조중동 (0) | 2010.09.30 |
대통령의 조선일보 읽기 (1) | 2010.09.27 |
조중동, 정말 지원 안 받을 건가? (0) | 2010.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