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통일·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KBS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취소 통보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KBS는 지난해 9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던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을 <아침마당>에서 하차시키고, 올 1월에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문재인 대선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한 바 있어 KBS 내 ‘블랙리스트’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한 전 부총리는 지난 5일 자신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를 주제로 KBS1 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제작진에게 출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제원 라디오프로덕션 국장은 제작진에게 “한 전 부총리의 회고록은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전 부총리의 회고록은 80년간의 개인사를 되돌아보며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낸 책이다. 문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에필로그에 촛불혁명의 열망을 배반하지 않는 정치를 해달라고 당부한 글이 전부다.
이 국장은 지난달 10일 같은 프로그램에 이정렬 전 판사가 출연하자 담당 PD에게 “이 전 판사는 쓰레기” “심각한 방송사고”라는 막말을 하고,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그는 또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가짜뉴스를 페이스북에 게시하거나 극우성향의 인사들을 패널로 섭외할 것을 지시해 물의를 빚었다. 그런 그가 한 전 부총리의 회고록을 정치적 홍보물로 폄훼하며 방송 출연을 취소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 권리를 도외시하고 있는 KBS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KBS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권 호위방송’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적 편파성을 보여왔다. 특히 현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 체제의 KBS는 권력의 방송장악에 부역하고, 편파·불공정 방송을 일삼아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지난달 초 KBS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고 사장과 이 이사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90%에 가까웠다. 지난 4일에는 기자 273명이 고 사장과 이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과 제작거부를 촉구했다. KBS 경영진은 공공성과 독립성을 무너뜨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공영방송 KBS가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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