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두꺼운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811쪽 분량의 책 제목은 ‘심의결정집’ 제56호다.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신문윤리강령’과 ‘신문광고 윤리강령’을 위반한 기사와 광고 사례를 담았다. 결정집은 한국신문협회 회원사들과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한 언론사 기사를 심의한 결과다.
‘일간신문 및 통신’에 대한 주의 및 경고 규제 건수는 총 1246건(중복 포함)으로 ‘보도자료의 검증’(531건), ‘통신 기사의 출처 명시’(102건), ‘기사와 광고 구분’(65건)을 무시한 경우다. 기업이 제공한 홍보 자료를 검증 없이 옮긴 기사가 많았다고 윤리위는 분석한다. ‘온라인신문’에 대한 주의·경고는 885건이다. ‘표제의 원칙’ 위반(204건), ‘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 금지’ 위반(134건)이 가장 많다. ‘선정보도의 금지’ 위반도 70건이다.
종이신문에 대한 몇몇 심의 결과는 대상 언론이나 기자가 저널리즘 원칙을 두고 다툴 만한 여지가 있으나, 온라인신문 경우엔 거의 없다. 한 예로, ‘경악!! 여중생들의 알몸 졸업식’이란 똑같은 제목의 기사로 경고를 받은 언론사는 4곳이다. 수년 전부터 ‘경악’이나 ‘충격’ 같은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두고 여러 비판이 나왔는데도 ‘제목 장사’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다. 선정적 제목을 달고, 다른 언론사 기사 내용을 그대로 베껴 주의나 경고를 받은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최고 언론을 표방하는 언론사 사이트도 ‘포르노’ 같은 단어를 넣어 트래픽을 높이려고 한다.
심의결정집은 보도에서부터 광고까지, 처참할 지경으로 망가진 한국 미디어 생태계를 보여준다. 언론사들이 처한 절박함과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신문윤리위원회엔 언론사 사장, 편집국장, 주필, 논설위원 등 현직 고위 간부도 참여한다. 자기가 속한 언론사에 주의나 경고 조치를 내리는 일이 벌어진다. 변화나 개선이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종이와 온라인을 병행하는 신문사는 온라인을 트래픽, 즉 수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트래픽 위주의 온라인 전략이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저널리즘 기반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포털로의 종속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5일 ‘네이버 미디어 커넥트 데이’에서 네이버가 내놓은 건 연 200억원 지원책과 기자 페이지 중심의 소통 강화였다. 네이버 의존도 심화는 언론사의 하청화, 기자들의 프리랜서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개별 언론사 브랜드가 사라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기자협회보는 이 행사를 전한 기사(12일자)에 ‘네이버 벗어나고 싶지만 갈수록 빠져드는 언론사’란 제목을 달았다. 수렁인 줄 알면서도 발을 담가 대책 없이 빠져드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생존의 절박함과 불가피함을 이유로 환부와 치부를 그대로 둔 채 연명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매체 다변화와 경기불황, 포털 종속과 언론 불신 심화의 상황에서 개별의 가치를 지켜내며 의미 있는, 지속 가능한 생존을 모색할 수 있을까?
기댈 곳은 저널리즘밖엔 없는 듯하다. 김용담 신문윤리위원장은 심의결정집 머리말에 “진실보도만 한 무기는 없다. 정의로운 신문, 공정한 신문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발전한다”고 썼다. 모바일팀에서 2년 반가량을 일하면서 확인한 건 특종과 기획같이 힘써 발굴한 기사에 독자들이 분명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온라인 트래픽과 순위가 높았던 건 성완종 특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7 대선 국면 때다.
정통 저널리즘의 수행만으로는 생존 문제를 다 해결하기 힘들다. 역피라미드 스타일의 기사만으로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때 바르게 유통하는 것도 디지털 저널리즘의 당면 과제다.
김종목 모바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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