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청와대는 KBS 보도국장 사전면접까지 했나

공영방송이라는 거죽을 입고 있긴 하지만 한국방송공사(KBS)가 인사나 보도제작 등에서 청와대로 상징되는 정권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종박방송’ ‘청영방송(청와대가 경영하는 방송)’ 등 KBS에 붙여진 명예롭지 못한 딱지는 KBS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연찮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청영방송’의 실체가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청영방송’의 속살은 지난주 세월호 유족들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희생자 관련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청와대 정문으로 몰려가면서 드러났다. 당초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며 버티던 KBS의 태도는 청와대 박준우 정무수석과 이정현 홍보수석이 유족들과 만나면서 돌변했다. 김 국장이 전격 사퇴했고, 길환영 사장은 유족들에게 달려가 사과한 것이다. 박 수석은 이러한 반전이 ‘청와대에서 부탁한 결과’임을 자신의 입으로 밝히기도 했다. KBS가 공영방송은커녕 사실상 청와대의 ‘하부조직’임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다.

KBS의 공공성과 독립성 회복을 위해 (출처 :경향DB)


이런 와중에 신임 백운기 보도국장이 임명 전날인 11일 청와대 관계자와 만나 ‘면접’을 치렀다는 의혹이 KBS 노조에 의해 제기됐다. 노조는 백 국장이 업무상 이유로 오후 3시10분부터 4시50분까지 차량을 썼으며, 행선지는 청와대라고 적혀 있는 배차기록표 사본을 증거로 제시했다. 파문이 커지자 KBS 사측은 “업무 협의차 관련자와 만났지만 보도국장 임명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지만 설득력이 없다. 보도국장 유력 후보가 인사 하루 전날 청와대 주변에서 ‘업무상의 관계자’와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었겠는가.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면접 의혹’과 관련된 사실을 남김없이 밝히고, KBS의 인사와 보도제작에 관한 통제·간섭을 중지해야 한다. 청와대가 앞으로도 계속 KBS를 장악하고 싶다면 이참에 공영방송이라는 위선적인 허울을 벗겨내고 아예 자신의 부설기관으로 만드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이처럼 ‘공영방송 KBS’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KBS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는” 길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이 퇴진하지 않으면 찬반투표를 거쳐 제작거부에 들어가겠다는 결의를 천명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욕의 ‘청영방송’을 청산하고 공영방송의 본령을 지키겠다는 기자들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