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거나, 재난상황을 선정적 보도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또한 재난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굳이 법령이나 규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릇 언론이라면 하나의 상식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국가기간방송이자 국가재난주관방송이라는 KBS는 세월호 참사라는 미증유의 상황을 맞아 이러한 상식에 어긋나는 길을 걸어왔다. 대형 오보와 정권편향적 보도로 물의를 빚는가 하면 중요한 직책에 있는 간부들이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광범위한 분노와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유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을 들고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밤새 항의시위를 벌이다가 청와대로 장소를 옮겼다. 또 몇몇 KBS 간부들은 경기 안산시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유족들에게 붙잡혀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이는 KBS에 대한 유족들의 분노와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유족들이 격노한 이유는 비단 보도행태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비평 전문매체 미디어오늘은 지난 4일 언론노조 KBS본부의 말을 인용해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생각하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김 국장은 또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칙칙한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했다고도 한다. KBS 측은 김 국장 발언이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강조하다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유족들의 분노와 불신만 키웠을 뿐이다. 결국 파문이 커지자 김 국장은 어제 사퇴했다. 그러나 KBS가 이 정도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제작을 통해 공영방송 본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김 국장 사퇴는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 될 뿐이다.
KBS가 이처럼 지탄받고 있는 마당에 KBS 수신료 인상안을 단독으로 국회 상임위에 상정한 새누리당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선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야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상안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했다. KBS가 정권의 안위만을 살피는 ‘정권호위주관방송’, 대통령 찬양미화에만 열을 올리는 ‘종박방송’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는 상황에서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를 올리는 후안무치한 짓을 한다면 국민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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