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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좌초 위기 맞은 KBS와 길환영 사장의 거취

공영방송 KBS가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세월호 사고를 현장 취재해온 젊은 기자들이 편파보도에 대한 반성문을 공개적으로 밝힌 데 이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영정을 앞세워 KBS를 항의 방문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희생자 가족들의 사퇴 요구에 끄떡도 않던 보도국장이 청와대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경질되더니, 새 보도국장은 청와대 앞에 불려가 면접을 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물러나는 보도국장의 입에서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KBS 기자협회는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급기야 어제는 보도본부 부장들이 집단적으로 보직 사퇴를 발표했다.

보도본부 부장단은 사퇴 성명에서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직접 요구했다. 길 사장이 정권 비호를 위해 사사건건 보도에 간섭해왔다고 주장한 전임 보도국장의 폭로가 “길 사장의 평소 행보에 비춰볼 때 충분히 사실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것이다. 실제 전임 보도국장은 길 사장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톱으로 보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구체적 사례를 든 바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연상케 하는 소위 ‘종박뉴스’의 배후로 길 사장을 지목한 셈이다.

언론노조 KBS본부, "청와대는 KBS에서 손을 떼라' (출처 :경향DB)


전임 보도국장의 이 폭로에 대해 길 사장은 가타부타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만약 근거없는 말이라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중징계를 내리는 게 상식이고, 사실이라면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KBS 사장은 KBS 업무를 총괄하지만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편성책임자를 선임하는 권한밖에 없다. 사장의 사사건건 보도개입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한 방송법 제4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KBS 사장의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해서 청와대가 KBS 보도와 경영에 이래라저래라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길 사장은 점점 악화되는 KBS 사태의 정점에 자신의 거취문제가 달려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조직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불신임받은 사장이 청와대에서 신임받는다고 해서 정상적으로 업무수행을 할 수는 없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내부 반발은 물론 국민적 지탄을 면할 수도 없다. KBS를 청와대가 직접 경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에서 ‘청영방송’이라고까지 조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