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반시설이 세계 최고인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제한받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세계 65개국의 ‘인터넷 자유’를 평가해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을
‘부분 자유국’인 21위에 올렸다. 점수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떨어졌다. 프리덤하우스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자 검찰이 온라인 명예훼손을 보다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한국이 21위에 자리한 것은
접속하기 쉬운 인터넷 환경 덕분이다. 사용자 권리나 콘텐츠에 대한 제약만 보면 32위로 앙골라, 잠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내년에는 인터넷
자유국 순위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어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글을 삭제·차단할 수 있도록 한 심의신청 자격을 종전 당사자에서 제3자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표현의 자유 위축이 우려된다.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마음만 먹으면 사법기관처럼 명예훼손 여부를 직권으로 심의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청자 확대로 명예훼손 신청이 크게 늘어날 것이고, 인터넷 글이 통째로 삭제되거나 접속이
차단되는 사례 역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덤하우스가 꼽은 '세계의 자유국'_경향DB
고
위 공직자 등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신청의 경우 법원 확정판결이 있을 경우에나 가능하도록 제한했지만 이 역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당사자 대신 방심위가 나서서 관련 게시글을 모두 삭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방심위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선출직 출마를 앞둔 이들에게는 찝찝했던 과거를
세탁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 구성원의 기본 권리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여론을 형성하고, 공론화되면 정치와 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권위주의 국가들은 사회·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 인터넷 개방을 꺼려왔다. 권위주의 성격이 강한
정부가 이번에 인터넷 명예훼손 규정을 강화한 것도 비판 여론을 억압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공간조차 내주지 않을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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