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대립해온 방송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 미래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해 다음달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 의견을 받아들여 그간 쟁점이 돼온 종편의 편성위원회 설치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치권이 민생국회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이 작용했다고 한다. 이번 합의로 방송법 개정안은 조·중·동 종편의 압력에 굴복한 채 빈껍데기로 전락한 꼴이 됐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1년간의 노력이 물 건너갔다는 사실에 참담할 뿐이다. 이래놓고 여야 정치권이 공정방송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방송법 개정안은 여야 모두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지난 2월 합의한 개정안은 KBS 사장 인사청문회 실시와 종편의 노사 동수 편성위 설치, 방통위·방통심의위·공영방송 이사의 자격 요건 강화가 주된 골자다. 하지만 합의 하루 만에 새누리당이 편성위 설치 백지화를 요구한 채 개정안을 파기하면서 법안 처리가 미뤄졌다. 종편이 일제히 “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며 반발한 탓이다. 종편은 이후 “미방위는 식물국회”라며 방송법 재개정을 압박했다. 여야가 당초 합의안을 팽개친 채 법안을 ‘개악’한 것은 ‘조·중·동이 담합하면 국회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단체, 채널A 방송법 위반 고발(출처: 경향DB)
종편의 적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노사 동수의 편성위를 설치한다고 종편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조직 구성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편파·왜곡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검열이라도 하라는 마지노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마저 포기한 것은 종편의 횡포를 방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KBS 사장의 인사청문회에 흡족해하는 야당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인사청문회로 낙하산 사장을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여야는 법안 처리를 보류한 채 방송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종편의 편성위뿐 아니라 그간 제기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방송 공정성 확보 방안을 새로 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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