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에서 문제가 많은 수장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인물을 뽑았을 때 후임자가 역량이나 경륜, 도덕성 등 모든 면에서 전임자와 대동소이하거나 더 못할 경우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쓴다. 끊이지 않는 인사 참극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나은 게 전혀 없다는 원성을 사고 있다. 시민들의 이러한 절망 섞인 푸념은 조만간 KBS를 향해서도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보도 외압 논란으로 해임된 길환영 전 KBS 사장의 후임으로 6명의 후보군이 추려졌으나 이들 중 다수가 공영방송 최고책임자로는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KBS 이사회는 엊그제 사장 공모에 참여한 지원자 30명 가운데 전·현직 KBS 간부 6명을 신임 사장 후보로 결정했다. 이사회는 이들을 상대로 면접심사를 실시한 뒤 최종 후보 1명을 뽑아 청와대에 임명제청안을 제출한다. 문제는 후보자 6명 가운데 노조가 부적격자로 지목했던 인사가 4명이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후보는 보도본부장 시절 대기업으로부터 수백만원대의 골프 접대를 받아 물의를 빚었으며, 편파보도 논란으로 구성원들로부터 불신임을 받아 불명예 퇴진했다. 길 전 사장은 그를 방송부문 부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또 어떤 후보는 길 전 사장이 해임된 이후 보복인사를 남발했다고 한다. 재벌그룹 창업자의 탄생을 기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빈축을 산 후보도 있다.
KBS 노조원의 간절한 마음은..길환영 사장을 퇴진
우리는 노조의 부적격자 명단이 사장 선임의 절대적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임 사장이 청와대 보도 외압 논란으로 사퇴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후임 사장을 뽑는 데 중요한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명단의 내용은 ‘이 인물들이 과연 청와대 등 외부권력으로부터 보도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의문으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의 입맛대로 사장을 뽑는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KBS 구성원 절대다수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우리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제도의 도입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사회는 끝내 이를 외면하고 ‘제2의 길환영’을 만들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이사회의 여당추천 이사들이 다수의 힘만을 믿고 부적격자를 사장으로 뽑는다면 KBS 구성원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들의 불신 또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질 것이다. 이사회가 그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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