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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시론]TV수신료에 대한 오해

TV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안정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공영방송의 재원 마련이 목표였다면 정부의 일반세수에서 지원을 하면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신료라는 것을 만든 이유는 자본과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국민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광고수입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하기 위해 정부예산에 의존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최선의 모델로 일컬어지는 BBC를 포함한 유럽 공영방송사의 3분의 2가 수신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공영방송은 태생부터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말이 ‘국민의 방송’이지 국민이 방송국 사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지 않는 한 결국 공영방송의 임원들은 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여당권력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BBC의 최고기구인 BBC트러스트는 멤버들 전원을 집권당이 임명한다.) 임명 후에 독립성이 유지되기도 어렵다. 권력의 그림자는 빈 공간을 파고든다. 대한민국 검찰을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리 절차적으로 독립시켜도 검찰의 권력보위적 기소 행태에 변함이 없는 것을 보라.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무엇이 그런 권력이 될 수 있을까?

KBS수신료 납부 거부


바로 시청자다. 공영방송이 수신료에 의존하도록 만든 것은 공영방송의 임원을 누가 임명하든 공영방송을 시청자 권력의 감시하에 두기 위함이다. 일본 NHK도 전액 수신료로 운영되는데 NHK가 최근 NHK 회장의 제국주의 망언 같은 사회적 스캔들에 휩싸이면 곧바로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벌어진다. 물론 법적으로는 결국 납부해야 하지만, 시청자들의 불복종운동 위협은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우리 KBS도 수신료에 의존하는데 왜 이 모양인가? KBS의 친정부적 방송행태는 김인규 사장 시절부터 시작해 악화 일로를 걸어왔고 세월호 참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족들이 ‘구조당국을 비호하던 방송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하고 있다.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는 전기료가 납부되는 자동이체계좌에서 수신료가 강제로 납부되고 있다. 즉 시청자들의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기를 끊거나 TV수상기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러하다. 강제납부제도는 공영방송과 시청자 사이의 건강한 상호책임성의 관계를 파괴한다. 시청자들이 납부거부를 통해 의사표현을 할 물리적 기회마저 없다면 공영방송이 겉으로는 아무리 ‘시청자를 위한다’고 해도 시청자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도 아무리 말로는 불만을 터트려도 자신들의 양심의 자유에 반하게 수신료가 자신의 계좌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면, 방송사와의 관계는 억압이 된다.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 외에 그리스, 터키 정도에만 있고 이 나라들에서도 불만이 비등하다고 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에 따르면 수신료가 강제납부되고 있지 않던 1987년의 민주항쟁의 시작이 ‘땡전뉴스’에 대한 수신료 납부거부운동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군정종식은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했지만 ‘땡전뉴스’는 없어졌다. 그후 전기료와의 통합으로 수신료강제납부가 이뤄지면서 방송을 둘러싼 권력구조에서 시청자는 추방됐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수신료를 지금처럼 강제징수 안하면 공공성의 물적 토대가 훼손된다고? 다시 말하지만 수신료의 목표는 재원 마련이 아니라 방송사와 시청자 사이에 건전한 책임성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정말 돈이 걱정이라면 차라리 수신료를 올리자. 강제납부제도만 폐지한다면(TV수신료를 전기료와 분리해 징수한다면) 당장 BBC 수준으로 올려도 지금보다 공정한 방송을 보게 될 것이다.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