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정보+보도자료

소설가 김훈의 서재가 ‘막장’이라고?


※ 이 자료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가 진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단체협력 사업 <언론의 눈으로 본 인권>모니터 2팀 (민진우, 박만수, 박성용, 양선회, 이희봉, 조윤희, 조재형, 채임이, 하성재)에서 조사한 것입니다.
최종 정리는 박민영&허미옥입니다.

〔언론&인권 3 : ‘막장’오남용 사례〕사전도 ‘혼돈’, <조선일보> 가장 많아

“소설가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
한 포털사이트에서 진행한 명사서재를 취재하는 기사 중 소설가 김훈의 서재에 대한 기사의 제목입니다. '광산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 끝부분'이라는 사전적 용어보다‘막장’국회, ‘막장’드라마 등의 용어에 익숙했던 저희에게 김훈 씨의 서재가 ‘막장’이란 제목에 낚여(?)서 마우스를 클릭하게 되었습니다.




 

▲ 네이버 화면 캡쳐 : 김훈의 서재는 막장이다.

김훈씨는 ‘막장’의 사전적 용어 즉, ‘갱도의 막다른 곳’의 의미를 살린 ‘막장’이란 단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휴~, 다행입니다.)

“여기는 내 서재라기 보다는 막장이에요.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데를 막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지요. 광부의 장비가 곡괭이나 삽이듯 이 방에는 나의 도구들이 있어요”

2009년 3월 : 석탄공사 조관일 사장 “막장은 희망이다”

2009년 3월, 석탄공사 조관일 사장(이하 조사장)은 언론에서 마구 사용하기 시작했던 ‘막장 범죄’, ‘막장 드라마’, ‘막장 국회’등의 용어가 부적절하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조 사장이 3월 3일 언론을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 <막장은 희망이다>(해당 글은 3월 4일 강원도민일보에 기고형태로 실렸다)에는 “기존의 ‘막장 범죄’, ‘막장 국회’, ‘막장 드라마’ 등에 사용된 ‘막장’의 오용사례”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한 것인데요.

▲ 강원도민일보 2009년 3월 4일.

주요내용은 “‘막장’은 석탄광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의 끝부분이고, ‘숭고한’ 산업 현장이며, ‘진지한’삶의 터전이다”라며 “막장의 근무환경은 열악하지만, 그곳은 막다른 곳이 아니라 계속 전진해야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고 주장하고, “힘들고 어려운 때, 용어하나라도 남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많은 언론은 조 사장의 메시지를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MBC, SBS는 저녁 메인뉴스에 클로징, 많은 신문은 조 사장의 주장글과 함께 칼럼 등을 엮었습니다.

대다수 신문에서 다룬 칼럼의 주요한 맥락은 “‘막장’은 탄광의 최일선, 석탄을 캐내는 갱도의 끝부분이고, 30도를 웃도는 열기에다 혼탁한 공기, 붕괴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사회에서는 ‘갈 데까지 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절망적인 의미'로 해석해 왔다”며 “‘막장’이라는 낱말의 무분별한 사용과 사회적 유행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하고, 말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써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는데요.

‘막장’ 오용 안된다|언론 보도 '수정?', 글쎄요!’

과연, 신문들이 지면을 통해 ‘충고’한 이 메시지는 효과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인권>팀에서는 조 사장의 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2009년 3월 4일~2010년 10월 23일까지 전국일간지(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와 지역일간지(매일신문, 영남일보)의 ‘막장’ 오용실태를 조사했는데요.

▲ 신문사별 ‘막장’ 사용 사례수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결론은 참담합니다. 조사된 기사 총 348건 기사 중 93.7%인 326건 기사가 ‘막장’이란 단어를 오용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막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언론사 대부분이 사전적 의미 보다는 잘못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석탄공사 조 사장의 주장을 인용한다면 “막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멍이 들도록 이 용어를 남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조선일보>2009년 3월 5일 <만물상>에서, <영남일보>는 2010년 9월 15일 <자유성 : 話頭의 변천>을 통해 조 사장의 주장을 지면에 옮겨놓고 있지만, 해당 언론에서는 ‘막장’오남용 사례는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막장’ 오류 해석 | 사전별로 ‘혼돈’

<언론&인권>팀에서는 우선 ‘막장’이란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먼저 찾았습니다. 국립국어원과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막장’과 관련 (1) 갱도의 막다른 곳 (2) 끝장(일의 마지막) 이라고 제시하고 있었고, 다음과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1) 갱도의 막다른 곳 (2) 끝장(일의 마지막)의 잘못이며, ‘끝장’의 의미로 ‘막장’을 쓰는 경우가 있으나, ‘끝장’만 표준어로 삼고, ‘막장’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언론&인권>팀에서는 조 사장의 주장을 최대한 살린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네이버 국어사전이기 때문에, 이 두 사전의 해석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매일신문, 영남일보에서 해당 기간 동안 사용한 ‘막장’용어를 보면, 조선일보가 183건, 한겨레신문이 33건, 매일신문이 71건, 영남일보가 61건이었는데요. <조선일보>에 비해 <한겨레신문>에서 ‘막장’용어 사용비중은 매우 작았습니다.

그 중 ‘막장’ 오남용 사례는 조선일보가 172(94.0%)건, 한겨레신문은 30건(90.9%), 매일신문은 65건(91.5%), 영남일보는 56건(96.7%)였습니다.

‘막장’오류 | 조선일보 가장 많고, <매일>, <영남>마찬가지

▲ ‘막장’ 오남용 사례 분석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막장’ 오남용 사례 대부분은 드라마 부분이었습니다. 총 사례수 326건 중 드라마를 지칭하거나 또는 칼럼 등에서 ‘막장 드라마’등을 비유한 경우는 196건으로 (60.1%)에 해당했고, 드라마 이외에 정치, 경제, 인생, 스포츠 등에서 ‘끝장’의 의미로 ‘막장’을 사용한 사례가 93건(28.5%)이었으며, 영화, 연극, 막말 등을 설명하는 용어로 ‘막장’을 사용한 사례가 36건(11.0%)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막장’ 오류 사례가 가장 많았던 <조선일보>의 경우 2009년 3월 5일 <만물상 : 막장>에서 “석탄 공사는 낮춰 부르는 듯한 ‘광부’라는 말 대신 ‘생산직 사원’이라는 호칭을 쓴다”며 “막장은 막혀 있는 곳을 맨몸으로 뚫어내는 노동의 숭고함이 빛나는 곳이다. 드잡이판 국회, 저질 드라마는 ‘막장’을 수식어로 달 자격이 없다”고 꼬집고 있지만, 자신의 지면에 사용된 ‘막장’오용사례를 개선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막장’ 논란 | 탄광 가족들에게 ‘상처’없도록?

▲ 한국일보 10월 18일 칼럼

최근 칠레 구리광산 매몰광부 33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는 과정에서 ‘막장’이 본연의 사전적 의미가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한국일보>이유식 논설위원이 10월 18일 쓴 칼럼 <지평선 ‘막장’의 희망>에 따르면 “막장은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 곳이자 광부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들이 캐 낸 희망으로 우리가 한때 따뜻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정연수(탄광문학연구로 원주대 석박사)씨의 주장을 옮겨놓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특히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언론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언어 하나하나가 그 상대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 저널리즘에서 고민해야 할 주요한 사안입니다.

또한 국어사전에서도 이 용어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