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때 민간 잠수사로 시신 수습에 참여했던 김관홍씨가 세상을 등졌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애국자나 영웅이 아니라 단지 ‘잠수’ 기술을 가진 국민이었기 때문에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던 김관홍씨는 그 후유증으로 잠수사 생활을 못했고 생활고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생활고에 대한 분노보다는 2014년 7월10일 민간 잠수사들이 시신 수습을 포기하겠다고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왜 쫓겨나야 했는지 궁금해했고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미수습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국가’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앞으로는 국가가 책임지고 다시는 국민을 찾지 말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못지않게 절망하고 분노해야 할 것은 정말 언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언론’이 없다는 사실 아닐까? 김관홍씨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나와 국가가 국가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절절히 증언했지만 대다수 주요 언론들은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김관홍씨의 죽음조차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기사 가치 자체를 모를지도 모른다. 1차 청문회를 제대로 취재하지도 기사화하지도 않았으니까.
바람직한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소외된 약자의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20세기 초·중엽 미국이나 유럽 각국의 기자들은 당시 언론이 강자의 목소리만을 대변하고 약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흔히 언론이 편파적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언론이 소외된 약자에게 편파적일 정도로 우호적인 것이 오히려 공정할지도 모른다. 강자는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다양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언론인 스스로 자기비판을 한 지 1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사회의 약자들이 내는 목소리를 얼마나 전달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기자회견, 집회, 농성 등을 통해 자신들의 억울한 현실을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애끊는 목소리를 내는 현장에서 기자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18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앞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는 현대차와 정몽구회장의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 노조원이 자살한 한광호 조합원의 영정을 들고 있다_경향DB
지난 3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 한광호씨가 사측의 노조활동 탄압과 민형사상 고소·고발, 그리고 계속된 징계 속에 고통을 받다 44세의 생애를 스스로 마감했다. 2011년 유성기업 노조가 주야 2교대 작업 폐지를 요구하자 노조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 당시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과 계약을 맺고 관리직과 용역을 동원, 소위 ‘생지옥 프로젝트’라는 대대적인 노조 파괴 작전을 개시했다.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상시적인 욕설과 폭력, 모욕주기, 허드렛일 강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했다. 원청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창조컨설팅과 주 1회 이상의 모임을 갖고 노조 파괴를 모의했다는 사실은 검찰과 국회 조사에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유성기업 노동자들만의 현실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 투쟁은 부지기수다. 혹시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노동자들의 투쟁은 알고 있을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피해자들인 반올림의 투쟁 또한 눈물겹다. 삼성전자가 합의에 나선다고 할 때는 기사가 됐지만, 삼성전자의 미온적 태도로 반올림이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장기 농성할 수밖에 없게 됐음을 다루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기사는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2011년에 알려졌다. 그동안 업체는 잘못을 부인했고 관리 책임을 맡은 정부는 서로 핑퐁게임만 하고 있었다. 제조물이니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라는 보건복지부나, 폐 손상이니 보건복지부 소관사항이라는 산업통상자원부나 우리 사회에 ‘국가’가 없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언론은 그동안 뭘 했을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달했을까? 최근에 이르러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판 옥시나 애경, 롯데마트에 비해 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은 기사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다. SK케미칼이 언론에 자신들은 잘못이 없음을 해명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언론은 지금 SK케미칼의 목소리만큼 과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는지 의문이다.
언론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자들이 뙤약볕 밑에서, 폭우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전달하려 애쓰는 현장에 가면 ‘언론이 제 구실을 다했다면 저들이 저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 하는 감회가 든다. 언론과 언론인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출입처나 자본의 좀 더 잘 다듬어진 보도자료에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자신들의 노력으로 소외된 약자들의 억울함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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