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미군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반발을 막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와 관련한 정쟁을 중단하라고 발언했다. 그렇지만 성주 마을회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내리고, 황교안 총리의 방문에 항의했다. 그리고 보수 언론은 앞장서서 이를 비판했다. 국가 안보에 개인 손해를 앞세워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에 동조하고 있다.
국가란 국민의 집합체이다. 국가 안보는 정권의 판단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일부 국민의 견해대로 결정할 사안도 아니지만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논의로 합리적 판단을 해야만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여기에 언론의 책임이 있다. 국가 안보가 중요한 만큼 충분한 정보, 다양한 의견 그리고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비판 등으로 합리적 결정에 이르게 하는 언론의 책임은 더욱 크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사드 배치라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지난 2월 KBS 김영근 해설위원이 국가 이익이 최우선이라며 “한·중 교역량은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많고 가장 큰 무역흑자도 중국에서 나오는 게 현실”이고, “대외의존형인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군사안보적 이익 그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다”는 해설을 했다. 김진수 해설위원은 성주 배치가 결정되고 난 후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대단히 거세다. 심지어 군사적인 대응까지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사드 배치 지역으로 거론되는 지역들까지 강하게 반발하면서 앞으로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고 해설했다. 객관적 상황을 언급하며 상식적인 우려를 했다. 닥쳐올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비판받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데 이 정도를 두고도 사장은 해설이 중국 관영매체와 같고, KBS 뉴스방향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고, 보도본부장은 이들에 대한 인사조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측은 부인했단다. 원론적인 언급만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사권자인 사장의 원론적인 언급이 기자들에게 주는 압력이 어떨지는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보도국장을 움직일 정도의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읍소’했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압력일 것이다. 결국 김진수 해설위원을 보도본부 밖으로 내보내는 인사 조치를 했다. 오비이락이라고 할 것인가. 원론적인 언급이 아니라 방송법이 금지한 편성권 침해를 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 당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KBS나 KBS 사장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국영방송’과 ‘공영방송’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후진적인 발상이다. 최근 사장이 강조한 ‘KBS 뉴스 방향’이 혹시 여기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국가와 정부를 혼동하는 비민주적인 발상, 정부와 시민 사이의 공적 영역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박약한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 않는지 우려스럽다.
사실 사드 배치로 한반도 주변에서 발생할 정치·경제적 변동은 우리 미래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도 모른다. 언론이 심각히 다뤄야 할 의제다. 지금 언론들이 이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드 배치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조차 검증하지 않고 옹호하는 언론에 기대할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가 배치되면 자신이 레이더 앞에서 직접 전자파 시험대상이 되겠다고 했다. 객관적 자료를 철저히 검증하면 될 것을 ‘정치쇼’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민구 장관이 성주로 이주하여 주민들이 우려하는 지역에 1, 2년을 살겠다는 것이면 혹 모를까.
국방부와 ‘공영방송’ KBS, MBC를 비롯한 언론들은 레이더 각도를 들먹이고, 100m 넘어선 지역은 안전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미군 교본은 100m 이내는 사드 요원들도 절대 출입 불가 지역이며, 100m에서 3.6㎞까지는 통제받지 않은 사람의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해놓고 있다. 위험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보도하지 않은 언론들은 기본인 사실 전달과 검증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안전 문제와 관련한 논쟁을 보면서 불쑥 떠오르는 가장 이해 불가한 의문은 미군이 설치하겠다는 사드의 문제를 한국 정부, 그중에서도 국방부가 앞장서서 변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다. ‘광우병 괴담’이라는 정파적 표현을 되살려낸 언론들은 객관적 자료조차 검토하지 않고 미국을 대신해 사드 안전을 설파하기에 바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언론들조차 정파적 이해관계를 국가안보, 국익으로 대체하기에 바쁘다.
최소한 공영 언론들만이라도 제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학계, 언론계, 국회 등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공영 언론의 지배구조 논의가 중요한 까닭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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