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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언론사에 문화가 없다

기자협회의 축구대회는 어느 날 한 젊은 기자에 의해 “노예 짓”으로 명명되었다. 선배 기자는 단합으로 생각했고 후배 기자는 동원으로 이해한 것이다. 술자리 후 후배가 선배를 챙기지 않았다는 그릇된 가르침은 언론사 블라인드 앱의 도마에 올랐다.

두산인프라코어 효과라 부른다. 입사하자마자 희망퇴직자가 되어버린 사건. 늦어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죽어라 학원을 돌아 평균 6.1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운이 좋아 2015년 전도유망하다고 알려진 대기업에 입사한 스물여덟 청년은 그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 개요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민주화를 광장에서 경험한 386 부모를 포함해 기성세대가 만든 대기업입사시스템은 압축성장의 그늘과 함께 그렇게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 구조조정의 측면, 경영자의 잘못된 판단 측면에서만 조망됐다. 2016년의 삶과 충돌하는 기업 문화, 그것이 더 문제다. 새로운 세대들이 처음 사회에 나와 더 기가 찼던 것은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업문화였다고 한다. 기술의 진화에 따라 오히려 도구는 민주주의의 모양을 한 하드웨어를 사용하지만 새로운 기술, 습관, 생각을 반영하지 않는 기업문화는 완벽하게 권위주의였다. 기업 문화라는 정신과 가치, 습관의 소프트웨어는 대체로 1972년이었던 것이다. 문화도 나이를 먹는다. 직장 상사와 선배들은 회사 내에서 자신도 모르게 옛 습관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두산인프라코어 2015년 '희망퇴직' 규모. 일반 퇴직자를 더하면 1700여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_경향DB


지난주 두 대기업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부터 근무기강 확립차원에서 점심시간을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1시간으로 엄격히 제한해 11시50분부터 대기하다 쏜살같이 뛰쳐나가는 장면이다. 글로벌기업 삼성전자는 우리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맞춰 대형 환영 광고를 파리의 오페라 광장 인근에 내건 장면이다. 이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문화다. 커다란 사옥에서 근무기강 확립과 이국의 거리에서 애국광고를 하는 동안 스물여덟의 젊은 그들의 마음은 회사를 떠나고 있다. 좋은 대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그들도 행복지옥에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

삼성전자를 나온 서른한 살의 젊은이는 퇴사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의 교과목 중 하나는 “덕업일체: 좋아하는 일하며 먹고살기”다. 올해도 다양한 언론사에 강의를 다니며 미디어혁신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거기서 느낀 것도 다르지 않다. 일과 삶이 분리된 젊은 회사원들이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내일 나갈 수 있을지, 평생 나갈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

CJ오쇼핑은 지난달 15일 새벽 2시 각 부서 막내들이 기획한 ‘오덕후의 밤’을 내보냈고 7분 후 330만원짜리 피규어가 팔려나갔다. 젊은 그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냈다. 신입기자들에게 고정관념과 습관이 없는 새로운 스튜디오를 선물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들이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 기획하고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실패할 기회를 주는 것이 새로운 세대와 협력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아재들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작부터 문화주도형(Culture-Driven) 혁신을 실천하는 프로야구구단 NC다이노스의 모토는 “정의, 명예, 존중”이다. 표방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을 그렇게 한다. 어느 날 야구를 잘하게 된 젊은 선수는 쉬고 잠자는 시간에 고참을 모시지 않는 환경이 있었던 것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해 2위를 한 그들은 포상금을 청소하는 사람까지 골고루 나눴다. 잠시 경기를 중단하고 운동장을 고르는 일을 담당하는 그라운드 키퍼들은 간단한 율동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다른 구단도 미국 프로야구 연수를 다녀왔지만 즉각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은 이들이다.

세계은행 총재였던 제임스 D 울펜슨은 “발전을 촉진시키고 혹은 후퇴시키는 문화적 가치와 태도의 위력은 지금까지 대체로 무시되어 왔다”고 말한다.

<습관의 힘> 저자 찰스 두히그 뉴욕타임스 기자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모두 실리콘밸리 회사다. 뉴욕타임스도 실리콘밸리 회사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거는 그 자체로 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미디어이고, 읽고 있는 책을 추천하는 학습조직이고, 딸의 출생과 함께 시회기여를 실천하는 사회공헌 기관이고 또 새로운 습관이다. 동료들과 협력과 창의를 공유하는.

혁신은 새로운 습관이다. 내리꽂거나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베껴서는 안된다. 그러니 혁신은 구성원의 합의다. 언론사에 문화가 없다는 말은 치명적이다. 가장 먼저 취재와 연수를 통해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기자의 조직이 왜 혁신과 거리가 먼지 생각해 보자. 기자를 포함한 구성원이 어떻게 일하고 느끼고 생각하는지가 혁신의 모습이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