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위기국면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위기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의 보도를 하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위기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라는 사안 자체가 심리적 위축 효과를 수반하기 때문에 사회적 담론을 경직되게 만들 수 있다. 이성적 논의의 내용과 범위를 축소시킬 수 있고 상황을 어이없는 수준으로 단순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필요한 논의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함으로써 합리적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방적 저널리즘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해당 사회가 지향해야 할 대원칙을 설정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재앙의 경우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이 극대화되어 있는 시기, 이것은 ‘반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같은 전제 아래 위기의 근원을 찾아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위기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구조적 동역학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시의성을 갖는 사건에 집중하는 사건지향성을 보이기 때문에 근원분석에 매우 취약하다. 해당 국면에 대한 피상적 원인분석이나 미봉적 대안에 집중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한 보도만으로 ‘예방’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북한이 연일 강도를 더해가며 전쟁을 위협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 같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일정한 한계 또한 드러낸다. 경향은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연일 긴장조성 행위를 중단하라 촉구하고 우리정부에도 대북유연성이 부족하다며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외부칼럼을 통해 핵전략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미치광이 전략’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남북 모두에게 대화에 나서라고 한다. 전쟁가능성이라는 상황의 급박성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태의 근원에 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차를 두고 전쟁가능성을 상정하는 극단적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향은 김정은의 집권 1년을 뒤돌아보며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복귀”하라 하고,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기싸움 프레임에서 조속히 벗어나라”고 권고한다. 경향의 설명대로 그것이 문제라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일반론 수준에서 거론되는 담론들만으로는 문제해결을 위한 유효한 방안들을 도출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하고, 케리 미 국무장관 역시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조짐을 보인다. 과거의 유사한 경험에 비추어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의 위기도 이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될지라도 위기관리가 적절하게 이루진 것이라 예단할 수는 없다. 관련국들의 대화와 조치들이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낼지 모르지만, 여전히 위기가 잠복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면 언젠가 유사한 위기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경향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태 해결책을 보도한다. 대개 북·미 간, 남북 간 대화나 한·미정상회담 등을 긴급처방으로 제안한다. 필요한 조치들로 보인다. 하지만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간략한 요약수준으로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상황의 민감함 때문일 수는 있겠으나 제한된 논의만으로는 합리적 여론을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언론역사를 보면 전쟁보도에서 언론들이 보인 행태는 다양하다. 황색언론시대를 이끌었던 뉴욕월드와 뉴욕저널은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을 부추기는 기사들을 실었는데 전쟁을 촉발하는데 일조했다고 비판받았다. 폭스뉴스는 이라크전쟁 보도에서 강한 우파 애국주의적 보도를 했는데 이것이 시청률 경쟁에서 승리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CNN은 최근의 전쟁보도들에서 전자오락을 연상케 하는 중계를 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은폐하는데 기여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다른 한편,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언론의 보도와 포클랜드전에 대한 영국 BBC의 보도는 전쟁보도의 범례처럼 받아들여진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언론들은 전쟁의 본질과 참상을 미국시민들에게 알려 반전여론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소이탄을 맞아 절규하는 소녀의 사진이나 베트남 경찰총수에게 권총으로 직결 처형당하는 베트공의 사진 등은 당시 미국언론의 보도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포클랜드전에서 BBC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해 전쟁을 앞둔 자국의 대처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자유언론이 인류 문명사의 산물이라면 야만적 전쟁에 대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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