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얼굴보다 마음에 주름살을 준다. 몽테뉴가 늙음에 준 경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인분을 퍼부은 60대를 보며 문득 떠올랐다. 무릇 무덤을 만나면 누구나 삼가게 마련이다. 백인이 인디언을 마구 학살했던 시기에 미국의 작가 어빙은 설령 원수였어도 무덤 앞에선 회한을 느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경상북도에서 살아온 60대는 어느 순간 울뚝밸이 치민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했다. “노무현 그대 무덤에 똥물을 부으며” 제목으로 유인물까지 만들어왔다. 노무현재단과 야당들이 조직적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한 이유다.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60대에게 행동을 직접 지령한 배후는 없을 성싶다. 다만, ‘검은 그림자’로서 배후는 있다. 보라. 그가 뿌린 유인물은 노 전 대통령이 “전교조·전공노·민주노총 같은 좌파세력들이 생성되도록 도와 청소년들의 정신을 세뇌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렸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고 부르댔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대체 참여정부가 “전교조·전공노·민주노총”을 언제 어떻게 도왔는가.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생각하고, 야만을 저질렀을까? 다시 유인물을 짚어보자.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 참여정부를 틈날 때마다 “좌파”로 몰고 “국가정체성”을 들먹여온 ‘조직’이 떠오르지 않는가? 비단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색깔을 덧칠해왔다.
바로 언론시장을 독과점한 신문들이다. 이미 김 전 대통령의 현충원 묘역에도 누군가 불을 질렀다. 당시 경찰은 ‘용의자’를 찾겠다고 부산떨었지만 흐지부지됐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김대중 묘역을 방화한 날 현충원 안에서 자칭 ‘애국’ 단체들 이름으로 유인물이 16장이나 발견됐다. 묻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금만 눈길을 보냈어도 과연 경찰이 현충원 안에서 일어난 방화범을 찾지 못했을까?
구렁이 담 넘듯 수사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또 다른 대통령 무덤에도 똥물을 뿌리는 만행이 일어났다. 김대중 묘역에서 발견된 유인물 내용도 독과점 신문의 논리와 어금지금했다.
저들이 저지른 야만의 ‘배후’로 독과점 신문을 짚은 데는 근거도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인터넷판에 뜬 ‘무덤 모욕’ 기사 아래에는 그 신문의 독자들이 쓴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역겹지만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몇 대목 옮긴다.
“똥물도 아깝다. 파헤쳐 북조선 그의 조국으로 보내라.” “내가 하고픈 마음 대신 행동해 주신 분!” “지난 5년의 쌓인 스트레스를 만분지 일만큼이나마 국민에게 풀어준 사건.” “인분뿌린 정 선생님에게 찬사를. 매우 용기 있는 어른으로서 매우 잘하신 일.” “정말 장한 일, 이 땅에 좌빨 분자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하나둘이 아니다. 저주의 주문이 줄줄이 이어진다. 김대중 묘역을 불 질렀을 때도 그랬다. “노무현이랑 같이 길이길이 한국현대사의 악의 축으로 남겨야 한다”고 부추겼다. 심지어 저 빛나는 오월항쟁까지 지역감정으로 폄훼하는 글도 올랐다. 옷깃을 여미며 묻는다. 누구일까? 과연 누가 저들의 마음에 저토록 험상궂은 주름살을 살천스레 파이게 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14일 인분이 뿌려진 뒤 경찰이 초록색 덮개를 덮어놓았다. 인터넷 카메라 동호회 ‘SLR클럽’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인분테러 뒤 노 전 대통령의 묘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눈으로 바라보자. 당신의 무덤을 모욕한 무리를 어떻게 볼까. 연민 아닐까? 김 전 대통령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행동하는 양심’을 호소했다. 경북의 60대가 똥물을 뿌린 바로 그 돌비석에는 노 전 대통령의 글이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60대의 마음에 사실과 전혀 달리 증오의 주름살이 가득한 데에는 그가 평생 읽어왔을 언론이 배후로 똬리 틀고 있다. 그 60대 앞에서 연민과 더불어 언론개혁이 얼마나 절실한 시대적 과제인가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기실 언론개혁은 두 대통령이 남긴 미완의 숙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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