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흔히 선거를 정치의 꽃이라고 하는 것은 유권자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주권을 행사하는, 즉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주권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출하고 나면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데 과거 주권자가 그렇게 중요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사용했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고무신, 막걸리 선거라는 부끄러운 행태는 아직도 그 모습을 달리해서 잔존하고 있다. 간접선거를 통해 체육관에서 99% 찬성으로 대통령을 뽑던 시절도 아주 먼 과거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답게 선거를 치르지 못하게 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언론이다.
선거는 여러 후보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다. 유권자는 당연히 비교 판단을 위해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홍보성 정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언론을 통해 얻는다. 제구실을 하는 언론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승만 독재나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했던 엄혹한 시절 말고도 대부분의 선거보도는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편파보도는 기본이요 경마중계식 보도, 지역갈등식 보도 또는 북풍 보도 등등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 시기 극심한 편파보도를 경험한 언론운동단체, 시민단체들은 매번 선거 때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를 만들어 모니터하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나아진 것은 없다.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거나, 언론 스스로 권력화되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만 지금은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이번에도 북풍은 심각하다. 오비이락일까? 북의 도발은 대개 선거를 앞두면 심해지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신중해야 할 우리 정부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단호한 대처를 강조한다.
이렇게 남북은 서로를 비난하며 일촉즉발의 상승기류를 탄다. 사실을 확인하여 진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들은 ‘국가안보’라는 특수 상황을 강조하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실어 나른다. 불꽃 튀는 남북대치에 기름을 부어 역으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 2년 전 지방선거 정국을 강타했던 북한 무인기가 지금은 위력 없는 ‘깡통 비행기’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2016 총선보도감시연대 출범 기자회견_경향DB
기울어진 운동장 속의 언론들은 테러방지법 갈등이나 각 당의 공천 갈등 보도에서도 사건의 본질을 알리지 않았다. 단지 갈등만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올바른 선택을 위한 인물 검증, 정책 검증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언론들은 유권자들이 바라는 진정한 의제가 무엇인지는 다루지도 않고, 유권자들은 정당의 선거 전략에 따른 공(空)약만을 전달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부분의 언론이 사기업이고 상품이 팔리면 그만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론 상품은 특히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소비하지만 소비자의 상품 평가는 점차 저하할 뿐이다. 비록 신문이 사양산업이기는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 신문이 더 급격히 쇠락하는 것은 상품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방송도 그 전철을 밟아 가고 있다.
이번 총선 보도 행태 역시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 추락을 야기할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영향력이 큰 지금의 주류 언론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는지. 그런 꿈을 가졌다면 그들이 꿈꾸고 생각했던 올바른 저널리즘이 붕괴되는 현장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2년 전 세월호 대참사 당시 ‘기레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시적으로 부끄러워했던 과거는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는지. 더 궁금한 것은 일선 현장의 기자들에게 취재를 지시하고 그들이 취재해온 기사를 편집해서 문제의 보도들을 만들어 내보내는 책임을 맡고 있는 간부들에게는 올바른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이 없었는지. 이제 존경받는 언론인이 되기보다는 세속적인 입신양명이라는 다른 욕망이 생겼는지.
40여년 전 우리 언론은 기관원들이 사무실에 무단으로 출입하고, 기사를 통제했다. 그런 현실을 비판하는 젊은 대학생 후배들은 ‘언론 화형식’을 열었고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젊은 기자들은 ‘언론자유실천선언’을 하고 저항으로 실천했다.
기자들을 대표하는 편집국장인 송건호 선생까지도 동참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권력에 의해 직장에서 쫓겨나 수십년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도 굴하지 않고 공정한 언론을 주장하며 언론인의 사표로 살고 계신다.
지금 현직의 기자들은 이런 선배들 앞에서 부끄러움이라도 느끼고 있는지. 후배들의 질타를 피하려 일말의 노력이나마 하고 있는지. 남은 총선 보도가 증명할 것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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