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넌 도대체 누구냐”

컨설팅을 하러 기업과 정부에 가보면 오전, 오후 한 번씩 종이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어느 대기업은 올해 언론 광고비를 30% 삭감했다.

스위스의 한 지역 TV방송국은 카메라를 아이폰으로 대체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개인방송을 지원하며 스트리밍 라이브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갑자기 페이스북이 총선 출마자들의 동영상 방송으로 도배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해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로 고객을 흔들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난 3월26일 주말판을 인쇄하는 것으로 종이신문의 발행을 중단했다. 뉴욕타임스는 팟캐스트 강화를 위해 오디오팀을 별도로 구성했다. 그런데 이번 주 논란이 된 슈피겔의 혁신보고서는 적나라하다. 과거의 습관을 가진 기득권 사내 세력이 세상의 변화에 “놀랄 줄 모른다는 것이다”. 수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튜브는 스스로를 “표현의 자유를 주는 플랫폼”이라고 정의한다. “당신의 언론사는 어떤 회사인가”를 물었을 때 오너 및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일하는 구성원들이 1분 안에 비슷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 언론사의 비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직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와 나는 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자들을 위한 ‘메시지 메이커스(Message Makers)’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너는 누구냐(Who are you?)”를 반복해서 묻고 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핵심 메시지 테스트를 한다. 스스로 비전과 목표, 메시지를 정리하게 한 후 따져보는 것이다. 첫 번째는 ‘진정한 장점에 기반하고 있는가?’, 두 번째는 ‘경쟁자로부터 차별화되었는가?’, 세 번째는 ‘청중에게 의미가 있는가?’이다. 로마공화정의 정치인이자 웅변가이며 철학자였던 키케로도 비슷하다. 기원전 64년, 집정관 선거에 출마한 형에게 보낸 캠페인 전략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가? 어떤 도시를 대표하는가? 어떤 자리를 노리는가?’ 같은 출입처와 취재원, 같은 독자 및 시청자 타깃, 같은 수익 모델을 가진 우리 언론은 스스로 다른, 남과 다른, 독자에게 다르게 이익이 되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영화 <스티브 잡스>_경향DB


영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의 상징이 되는 과정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별하고 배타적인 의미 부여를 위해 1997년 발표된 광고에서 그는 밥 딜런과 아인슈타인, 간디, 알리, 히치콕, 피카소, 마틴 루터 킹, 존 레넌을 등장시킨다. 대니 보일 감독은 “잡스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반골로 부르며 우상화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의 1984년 매킨토시 발표장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펜으로 예언하는 사람들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밥 딜런의 ‘세상이 변하고 있네(The Times They Are a-Changin’)’의 한 소절이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라고도 했다. 애플은 그렇게 하나의 특별한 경험과 세계를 창출했다. 우리 기업의 광고는 유명 스타들의 향연장이지만, 광고 자체의 정체성을 찾기란 어렵다. 그것이 차이다.

그럼 ‘다른 나’를 위해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언론사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질문은 “내가 당신의 콘텐츠를 만난다는 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이다. 그 답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그가 읽는 책, 곁에 두는 친구, 입에 담는 칭찬, 입고 다니는 옷, 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는 이야기, 걸음걸이, 눈빛, 사는 집, 그의 방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서로 무한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다. 독자가 말한다. “언론, 당신 삶의 취향과 태도를 보여달라, 관찰-발견-선별-편집-유통의 전 과정을 나와 연결해달라.” 알랭 드 보통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독특한 취향과 편집의 세계를 말이다.

전략이란 이런 것이다. 연초 영국에 잠시 들렀을 때 잡지 ‘모노클’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영어만을 사용하는 그들은 국제정치, 비즈니스, 디자인, 건축, 도시, 패션, 소품을 동시에 다룬다. 종이를 매체의 중심으로 잡고 온라인-라디오-카페-키오스크-콘퍼런스를 움직인다. 와이파이 접속 방법을 카페에서 일하는 분에게 물었다. 없다고 한다. “우리는 오프라인을 중시해요.”

올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그들의 콘퍼런스는 상당한 고가다. 저가 시장에는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테크·미디어 분석가인 베네딕트 에반스는 한마디로 모노클을 정의한다. “비행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잡지.”

총선 방송을 기획한 JTBC가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과 협업을 한다. 앞서간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