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도 어김없이 ‘깜깜이 선거’로 진행되고 있다. 근래 실시된 선거 중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었지만, 이번 선거는 더 심한 것 같다. 선거일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자신의 선거구에 어느 후보가 출마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당들이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는 거의 보도되지 않으며, 정당도 제대로 홍보하지 않고 있다. 그저 연일 공천을 둘러싼 갈등만이 뉴스거리이다.
이런 현상은 예상되던 것이기는 하다. 이미 작년 여름부터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사상 최악의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선거구 획정이나 이에 따른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수의 확정이 늦어지고, 주요 정당의 공천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언론들은 ‘깜깜이 선거’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책은 없고 정쟁만 있는 선거라는 비판을 되풀이한다. 언론이 해야 하는 사회비판 기능이다. 그러나 이 또한 선거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익숙한 얘기여서 그리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는 듯하다.
매번 반복되고 한층 더 심해지는 ‘깜깜이 선거’는 누구의 책임일까? 당선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 때문일까, 어떻게 해서든 한 석이라도 많이 자기 후보자를 당선시키려는 정당들이 문제일까? 물론 이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공인(公人)이다. 이들이 모인 정당은 나랏일을 좌우한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에서 언론이 자유로울까?
이번 선거를 보도하면서 대부분의 언론은 정당들 간이나 정당 내부의 갈등을 보도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정당들이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론의 무관심은 정당의 정책 부재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수출 감소에도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 중 20대 후반 청년의 실업률이 가장 높다는 보도가 나와도 그저 일자리를 몇십 만개 만들겠다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말을 정책이라고 얼버무릴 뿐이다. 언론은 이런 현실의 보도보다는 ‘3포 세대’와 ‘7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단편적인 정책조차 타당성이나 적절성의 검토보다는 포퓰리즘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나마 이런 보도의 대상도 두세 정당의 독점적 몫이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하자거나, 핵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자는 소수 정당의 정책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 정책의 적절성이나 실현 가능성은 따져볼 생각도 없다. 그것이 한국사회가 당면하였거나 앞으로 부딪힐 주요 과제이며, 선거가 이를 토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은 생각 밖이다.
2016 총선보도감시연대 출범 기자회견_경향DB
이번 총선거에서는 지역구별로 국회의원 개인에게 투표하지만, 비례대표를 뽑기 위한 정당투표도 있다. 지역구 투표는 인물을 보고 하더라도, 정당 투표의 핵심 기준은 정책일 것이다. 정책을 고려해서 정당 투표를 하게끔 언론이 유도할 수는 없을까? 정당들이 공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공천싸움에 힘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정책으로 유도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다. 정당의 규모나 영향력뿐 아니라 정책의 사회적 의미가 선거 보도의 또 다른 기준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깜깜이 선거’에서 벗어나 합리적 판단에 따라 투표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소수자의 입장과 생각을 대변하는 정당들도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 설사 당장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주요 정당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게 된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언론은 많은 문제를 지적할 것이다. 지역주의, 세대별 갈등, 정책의 실종, 파벌 다툼 등은 단골 메뉴이다. ‘깜깜이 선거’에 대한 비판도 반복될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깜깜이 선거’로 만드는 장본인 중 하나는 언론이다. 정책을 배제한 채 권력을 향한 개인이나 파벌의 갈등과 대립만을 강조함으로써, 투표를 할 마음을 줄이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가로막는다.
언론의 보도가 우리 정당의 모습이라면, 보도를 통해 정책을 개발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다. 물론 언론이 이런 역할을 하도록 견제하는 것이 시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제한적이라도 정당의 정책을 따져보고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할 때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언론의 선거보도가 그런 기능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면 쓸데없는 망상이 될까?
김한종 | 한국교원대 교수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디어 세상]“넌 도대체 누구냐” (0) | 2016.04.03 |
---|---|
총선 보도, 선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0) | 2016.03.27 |
[미디어 세상]총선을 뒤흔드는 저 거짓말 (0) | 2016.03.13 |
[사설]손석희 사장, 검찰태도 비판 앞서 사과부터 해야 (0) | 2016.03.10 |
[미디어 세상]‘테러 정국’ 진실 눈감은 ‘기울어진 언론’ (0) | 201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