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두 : [대화가 필요해]
* 제작자 : Noribang
* 제작비 : 원고료 0원 + 각종 비용 @
* 소재 : 경향신문사, 민주노동당, 기타 많은 이들의 의견
* 출연진 : 작금의 상황과 관련된 이들.
* 등장하는 상황은 대부분 제작자의 상상에 의해 구현된 것으로,
명예를 손상시킬 여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노라고 말씀드립니다.
# 1.
정동의 가을은 쌀쌀하다.
한참 도시화가 진행된 시내에는'열섬 효과'라고 해서
교외나 시골에 비해 난방이나 온실 기체, 아스팔트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다고는 하지만,
아직 바람이 실어오는 내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남아있다면,
가을은 여전히 가을인 것이다.
은행들이 알알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릴듯 달려 있다가,
마침내는 다시 그들도 엄마처럼 아름답고 노랗게 우거진
은행나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려 떨어지는 풍경...
하지만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은행알은 소수,
나머지는 아침 운동 나온 할머니들이
구부정한 허리를 더 굽혀 줍거나,
아니면 바쁘게 취재수첩을 들고 걸어다니는
기자들의 발끝에 밟혀서
자신의 존재를 처연하게 끝내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런 계절은, 요즘은 한참 늦춰졌지만
가을에 들어서면 그런 정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인왕산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며,
거의 10년은 됨직한 해진 외투를 여미며 걷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은행 한 번 많네...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군..."
이대근 논설위원,
경향신문사에 입사한지 어언 30년,
그 동안 어지간히 이 길을 걸어다녀
이제는 눈 감고도 걸어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3년 전인가, 후배 기자에게 그런 말을 하니,
"선배, 정말로 눈 가리고 한 번 걸어보면 어때요? 연륜을 증명할 겸... "
당돌한 그 말에 무심코 자극을 받아,
안대와 지팡이를 구해서 길을 걸어보려 시도했었다.
캐나다 대사관 인근까지는 비교적 잘 갔건만,
거기서 들리는 분수 소리에 발길을 멈추다가
하마터면 다칠 뻔한 적도 있었던 그였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발 밑의 은행을 피하는데 집중을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끄는 구둣발은
옛 신아일보사 앞으로 조용히 접어들고 있었다.
"선배, 지면에서 강공을 펼친다고 능사는 아니니,
한 번 직접 이야기를 해 보면 어때요?"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 2.
여의도의 햇살은,
가을이었지만 아직도 따사로운 편이었다.
얄궂게도, 국회의 채광 시설만큼은 잘 되어 있었다.
"정말 아쉽구나... 이건... "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이제 40대로 접어든, 아이의 어머니로서, 정당 대표로서
한참 일할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11가지 신문을 모두 구독하는 의원 비서실,
본래 정당으로서 언론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원 연수를 하면서 익힌 적이 있었다.
"하하~ 조선/중앙/동아만 다루면 되는 줄 알았는데..."
글쎄, 문화일보나 기타 언론들까지 합쳐서,
언제 민노당에 호의적으로 기사와 칼럼을 쓰는 이들이
그렇게 많았단 말인가?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일이었다.
"경향...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우리 진심을 모르는 걸까?"
이정희가 의원실에 혼자 앉아서 하는 말이었다.
본래 활달한 이 대표의 성격과는 다른 자세였지만,
이번 경향신문의 사설에 관해서 논박을 주고받았던 피로도 때문에,
이 대표에게는 조용히 싶은 시간도 많았던 것이다.
"진심을 말한다고 해서 그게 다 인정받는 건 아니니까요."
조용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곧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뒤에는,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는 비서가 있었다.
"아, 송 기자. 어서 오세요. 무슨 볼일이라도?"
"네....... 요즘 힘드시리라고 짐작은 되는데,
저희 신문사 이대근 위원과 만날 자리를 잡아 보려구요."
"...... 만난다고 뭐가 될 수 있을까요?"
송 기자는 조금 답답한 표정이었다.
"이 대표님, 지금 민노당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아신다면..."
"고마워요. 하지만 그건 송 기자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 않아요?"
이 대표의 서운함이 묻어나는 말에
송 기자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네...... 하지만 생각이 나시거든,
이번 수요일 저녁에, 한겨레신문사 식당으로 오세요.
아무래도 서로 그 쪽이 좀 더 편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다시 방문이 닫히자, 이 대표는 다시 의자에 앉아
햇살에 몸을 맡기고 생각에 잠겼다.
# 3.
이대근 위원이 돌아본 곳에는,
이제 입사한지 15여 년이 된 김 기자가
도시락통을 들고 서 있었다.
"도시락 갖고 가셔야지요.
안 그러면 선배 책상 밑에는 도시락이 8개째 쌓일 거예요."
평소 식당을 찾기보다는 도시락을 애용하는 편인데,
계속 통을 책상밑에 두고,
새로운 통을 집에서 갖고 왔던 까닭이다.
"아 그래.... "
"선배, 요즘 인터넷 댓글에서는요..."
"아니 됐어. 댓글로 세상을 어떻게 다 판단하나..."
"그래도 입소문만 듣기보다는, 댓글이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지도 봐야지요..."
하긴, 요즘 이 위원도 댓글을 읽고 있다.
생각보다는 재미있다고 느끼면서도,
댓글의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중이다.
"....... 그래서, 반응이 어떻대?"
"저도 정확하게 어떻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서로 반론들이 오고가는 상황인데, 일단은 선배 쪽이 좀 더 유리한 것같기는 해요..."
"........."
"참, 이정희 대표랑 만나는 일정 잡으려고 해요..."
"뭐?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아니요... 그건 아니고... 비공식적으로 만나서 풀어 보자구요.
뜻있는 사람들이,적어도 서로 만나서 이야기는 해 보자고 그랬어요."
"..... 이야기한다고 잘 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성격에..."
"알아요. 선배 성격 쉽지 않다는 거..."
이대근 위원은 순간 '본래 이 사람이 이렇게 직설적이었나?'하는 표정이었다.
"그만큼 선배가 유명하기도 하니까...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서로 입장을 말해 보자는 것이지요."
"이정희 대표는 수락한대?"
"글쎄요. 송 기자가 연락을 줄 거예요."
그 때, 김 기자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 송 기자님, 일은 잘 풀렸어요?... 그래... 네... 알겠습니다."
이대근 위원이 물었다. "뭐라고 말이 있었대?"
"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는데, 나중에는 만나겠다고 했답니다."
"서로 힘든 말을... 직접 보고 할 때가 오는구나..."
"선배,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이 기회에 더 친해질 지..."
"김 기자, 정치판이 아무리 험하다고 해도, 거기에 인간이 산다면,
누군가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는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게 되어 있어.
언론도 마찬가지지. 내가 대범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분위기가 신문사에도 아프게 돌아가면,
그건 나에게도 힘든 일이야. 그래도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또 언론이겠지...."
어느덧 완전히 넘어간 햇살의 잔영이
땅에 떨어진 은행 한 알을 곱게 비추고 있었다.
저물녘, 효창원에서 바라본 나무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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