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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기고]신문은 민주주의와 한 뿌리, 지원법 시급하다

정연우 | 세명대 교수·언론학


 

세계적으로 전통있는 신문들의 무기한 휴간이나 폐업이라는 흉흉한 소식이 이어진다. 위기라는 경고음이 켜진 지 오래다. 근대 시민민주주의와 신문은 같은 뿌리다. 신문의 등장과 발전은 참여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진전시켰다. 상업화에 대한 비판이 있긴 했지만 신문산업은 민주주의와 더불어 꾸준히 성장해왔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감시 그리고 깊이있는 보도와 논평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요즈음은 여론과 정보의 소통 통로가 바뀌어 신문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이나 트위터 및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긴 하다. 하지만 주요한 의제를 만들고 탐사와 발굴을 통한 깊이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숙의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신문을 대체할 수 있는 매체는 없다. 연예인의 가십거리를 비롯한 자극적인 흥미·오락 정보는 민주적 여론 형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의 단편적 정보 유통은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고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수는 있지만 깊이있는 합리적 토론마당을 만드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신문은 감정과 충동, 불완전한 정보 우려가 있는 매체와는 공신력의 차원이 다르다. 한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수렴하는 그물의 코를 꿰어 방향을 잡아주는 동아줄이자 벼리다. 벼리가 없으면 그물망은 헝클어지고 엉켜버린다. 분위기에 휩쓸린 군중심리에 우리 사회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신문은 냉철한 숙고와 판단을 이끌어주는 합리적·이성적 매체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나 국가적으로 특별한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도 신문의 공공적 역할을 당연히 여기고 그 혜택을 누려왔다. 신문은 정파성이나 편파 왜곡보도에 대한 비판이 있긴 했지만 민주주의의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해왔다. 오히려 지원이 정부 개입과 간섭을 불러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런데 매체환경의 변화로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면서 정책적 지원없이는 민주적 공론장의 역할도 위태로워졌다.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신문의 위기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받아들여 다양하게 정부가 지원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나라일수록 국가적 과제로 삼을 만큼 심각하게 인식한다. 18세가 되는 시민에게 신문 구독권을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을 하는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신문산업 진흥법 필요하다 (경향DB)


마침 우리도 ‘신문산업진흥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정부가 신문의 공동 제작과 유통을 지원하고, 국고 등을 활용해 신문산업 진흥기금을 설치하자는 게 핵심이다. 다양한 정보와 관점이 표현되고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기에 빠진 신문산업의 진흥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넓어졌다.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신문산업 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나선 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진전없이 다른 정치적 현안 때문에 뒷전으로 밀렸다. 신문은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보루다. 신문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가 민주주의에 대한 한 사회의 인식 수준이다. 정치인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평가하는 잣대다.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넘어 정치권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어떻게 튼실히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주적 가치를 믿는 정당이나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다. 신문산업이 위기라서 퍼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주적 여론 형성의 핵심적 기반이 무너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사실 신문의 본질적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갈수록 신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급격히 추락했다. 자사 이기주의나 정파적 논리에 빠진 편향적 기사나 논평은 신문에 대한 불신을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다. 신뢰를 잃은 신문은 건강한 여론 형성의 매개체 구실을 할 수 없다. 신문에 대한 정부 지원은 신문의 신뢰와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지렛대다. 엄정한 지원 심사를 함으로써 현금을 비롯하여 갖가지 경품이나 공짜 신문을 뿌리며 제살 깎아먹는 불법 판촉도 줄일 수 있다. 신문 지원 정책을 통해 다양한 신문들이 보도와 논평의 수준, 사회적 의제 발굴을 중심으로 경쟁하며 공론의 장을 만들어갈 것을 기대한다. 소수의 신문에 의해 시장이나 여론이 독점되지 않고, 다양한 신문들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만들어가는 여론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