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안보 정국, 나열에 그친 의제 구성

민영 |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지난주 남북 간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면서 “북, 개성공단 통행금지…”(4월4일자), “북, 탄도미사일 동해안 이동…”(5일자), “북, 평양 주재 각국 외교관들에 철수 권고”(6일자) 등 관련 기사들이 연이어 1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전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여러 소문들이 파급되고 있다.


4월 6일자 1면 (경향DB)


남북 간 대결 국면이야 우리 국민들에게 특별히 생소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 아래에서 대북정책 기조가 변하고 북한에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남북문제야말로 일반 시민의 정보 접근이 엄격히 제한된 영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배경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국제관계 전반에 대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함으로써, 시민들이 일련의 사건들 간의 관계나 관련 주체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개별 사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정부의 대응이 적절한지에 대해 시민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북한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그날그날의 사건 보도와 해설에 치중돼 있으며 인용되는 전문가 정보원의 수나 다양성도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정보의 양적, 질적 수준이 미흡하고 관련 사건과 상황을 통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프레임도 부재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그것이 야기하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정세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대북 정책의 프레임을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 자리를 통해 현 남북관계가 국제관계 전반에서 가지는 의미, 미국과 중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이해관계, 다른 국제분쟁과의 연관성 등이 논의돼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안보와 평화를 동시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올바른 대북정책의 방향이 무엇인지가 진지하게 숙고돼야 한다.


한편 지난주 경향신문은 ‘흔들리는 교실’ 기획을 통해 일반고 교육의 심각성을 고발하며 그 현황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특목고·자율고 설립 확대로 결국 서열화…”(4일자 8면), “일반고 입학성적 경쟁력 뚝…”(3일자 3면) 등 관련 기사들에 따르면, 지역을 막론하고 일반고 전체가 황폐화되고 있으며 그 주된 원인이 고교서열화 정책이라는 것이다. 교육 현장의 파행적 운영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고교서열화 문제는 지속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적절한 정책적 처방을 이끌어내야 할 중요한 현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교실’ 기획은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낳았다. 먼저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화적인 접근이 지배적이다. “20명 정도만 수업 듣고 나머지는 다 자요”(3일자 1면)나 “…수업 때 ‘참을 인’자 새겨…도 닦는 심정”(4일자 8면)이라는 기사 제목은 한 학생이나 교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의 문제점들을 충분히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기초하기보다 일부 학생, 교사, 학부모들에 대한 취재 내용을 일반화했다는 인상도 준다. “‘일반고 슬럼화’ 진행 중”이라는 4월1일자 1면 기사의 제목도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이러한 표현은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에 앞서 ‘일반고’를 낙인찍는 효과(stigmatizing effects)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단기적인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교육 현실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이고 대표성 있는 조사와 연구 결과를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아쉬웠던 점은 경색된 남북관계에 국민적,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교실’ 기획이 제기한 이슈가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론의 의제설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고려돼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적절한 ‘파도타기(riding the wave)’이다. 즉 어떤 문제가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합당한 관심을 획득할 수 있는 시점과 분위기에서 이슈 설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안보 정국에서는 의제설정의 시점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더욱 중요하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의제 구성은 다분히 병렬적이었다. 현 시점에서 언론은 역량을 집중해서 북한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정보 미흡’과 ‘프레임 부재’를 메꿔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안보 문제에 대해 과도한 불안감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다른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의제설정 공간도 확보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