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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대안 제시와 정치환경 감시에 충실해야

김춘식 |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향은 지난 1주일 동안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사건 가운데 성범죄(아동 성범죄와 성폭행 피해, 경찰의 성폭력 대책, 사형제 부활 논란)와 제18대 대통령선거(대통령후보 박근혜의 캠페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 경선과 당내 갈등, 안철수 원장 불출마 협박) 관련 이슈에 상대적으로 더 주목했다.


 먼저, 우리나라가 아동음란물 주요 생산국가(3일)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실태·문제점과 외국의 사례(4일)를 짚었다. 이틀 동안 7건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지만 건별 기사에 담긴 내용의 양은 적었고 심층성도 부족했다. ‘나주 성폭행’ 사건의 경우 범인을 면담한 경찰관과의 인터뷰 내용, 심리학자의 피해 학생 일기 내용 분석 결과, 범인 고씨의 개인사, 현장검증 소식, 피해 아동의 정신적 피해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5일). 그 과정에서 범인의 이동경로와 성폭행 장소를 촬영한 사진 4장을 통해 범행을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범죄예방 및 범인 검거를 위해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시각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CCTV 설치만으로 아동 및 청소년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 사건의 발생원인을 조명하는 뉴스가 필요했다. 가령, 6일자 1면(성범죄에 무너진 이 가정, 누가 살릴 수 있나)처럼 성폭행 피해 사례에 주목하거나 사건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전하는 뉴스는 부모들의 두려움만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해결을 위한 공공의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서는 맥락적인 단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어린이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사회환경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민복지 차원에서의 보호대책이 절실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향은 어린이 피살 사건(예, 통영 사건)과 어린이 성폭행 사건(예, 조두순 사건) 발생 이후 재발방지를 위한 정책 논의 및 집행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했어야 했다. 언론이 어린이 범죄를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환경을 제대로 감시했다면 정치인들이 ‘사형제 부활’이나 ‘화학적 거세 혹은 물리적 거세’같이 분노에 편승하는 대중영합주의 대책만을 해결책이라고 내놓을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성범죄에 관한 여론을 파악하고 이에 공명하는 대책을 내놓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선거 이후 정부가 추진할 정책 활동의 방향을 예측하는 방정식에서 정책 공약보다 정치인의 인간적 특성들(도덕성, 경험, 퍼스낼리티)이 더 유의미한 독립변인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현 정부의 통치 사례를 통해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어거지”라는 단 한마디로 역사 인식이 정치적 의사결정이나 미래 행보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한 박근혜 후보의 발언(5일 4면)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보도가 당연히 필요했다. 그런 맥락에서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 보기’(3일·4일) 기획기사는 박근혜 후보의 정책변화와 역사인식을 심층 진단함으로써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에 도움이 되는 해석의 틀을 제공했다.


‘한국정치와 안철수’ 심포지엄 제2부 (c출처: 경향DB)


‘한국정치와 안철수’ 심포지엄 지상중계는 파격적인 지면편집이었다. 민주통합당의 대통령경선 후보자들의 정치철학과 미래 국가운영의 비전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지면배정이 인색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그러했다. 그런데 이 지상중계는 ‘안철수 현상’이 등장하게 된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짚었다고 보기 어렵다. 제1부(시대정신과 안철수)에서는 안철수 현상을 기성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이라고 평가했지만, 2부에서 4부까지는 주로 선거에서의 승리가능성과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학자들의 주관적 추론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 철회를 의미한다. 결국 ‘안철수 현상’은 민주주의 정치의 요체인 정당정치의 붕괴와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관련 보도는 시민들이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신뢰를 거두게 된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탐색하고, 정당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방법론 논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은 정치영역에서 ‘소통의 부재’가 우리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왜곡된 정치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정상화시키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정작 언론보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정치를 전략적 게임으로 간주하고 정책논의가 아닌 정치인 이미지에 집착하는 부적절한 정치뉴스 생산 관행이 유권자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정치와 시민 사이를 매개하는 언론 또한 정치 불신과 이에 대한 책임 소재 논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다.


정치에 대한 식견을 갖춘 유권자가 행동적 차원의 정치참여(투표)에 가장 적극적이다. 언론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정치환경감시라는 본연의 공적 책무에 충실해 식견 있는 유권자 양성에 힘써야 한다. 그것만이 언론이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에 기여하는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