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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흉악범죄, 구체적 대책도 다뤄야

윤송이 | 이화여대 사회학과 4년


나주 성폭행 사건 피해자 ㄱ양의 그림일기 사진이 경향신문 지난 토요일자 1면에 실렸다.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집 안’에서마저 성범죄의 표적이 되는 사회라는 데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솟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언론의 보도 내용과 그중에서도 가해자 신상공개 등은 특히 논란거리다. 경향신문이 1면에 아이의 그림 일기장 사진을 실은 날, 다른 주요 신문들은 나주 성폭행 사건의 범인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중 한 신문은 “흉악범죄자는 이 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다”며 범인 사진을 공개했다. 흉악 범죄 보도 수위와 가해자 신상공개에 대해서는 찬반논쟁이 있는 만큼 개별 언론의 자율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언론이 범죄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어떤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보도 내용의 수위와 가해자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든, 적어도 그로 인한 무고한 피해자는 생기지 않아야 한다. 지난 1일 한 신문이 1면에 범인 사진으로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게재해 한 시민이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의 흉악범죄 보도의 고질적인 폐해로 지적되는 선정주의와 상업주의가 부른 결과로 보인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피의자 (출처: 경향DB)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언론이 범죄자를 ‘사회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식의 범죄 보도 행태가 선정주의와 상업주의로까지 이어지면서 불필요한 논란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언론은 사회에서 ‘권력 감시’ ‘갈등 조정’ ‘정보 제공’ 등의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지만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처벌을 언론의 역할 중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회적인 처벌은 국민 여론에 의해서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언론이 범죄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범죄사건 자체에 대한 개요, 정황 등의 사실전달과 함께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맥락을 다루는 일이다. 지난 7월30일자 옴부즈만 칼럼에서 엄주웅씨가 “하나의 뉴스에 담긴 선정적 요소 이외에 다양한 관련성 또는 중요한 의미(implication)까지 잡아내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의미다.


경향신문은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에 대해 ‘한부모 가정 많은 지역, 아동 성범죄 많다’(8월21일자), ‘가족이 잠자는 방에까지 침입, 무너진 취약계층 사회안전망’(9월1일자) 등의 기사를 통해 최근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 사건의 중요한 의미인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 문제를 짚었다. 1일자 사설 ‘집에서 자는 아이까지 성폭행 표적이 되는 사회’에서도 소외계층 아동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보장을 강조했다.


하지만 취약계층 아동들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지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향신문은 1일자 사설에서 “정부는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근절대책’을 내놓았지만 성범죄가 근절되기는커녕 발생빈도가 늘고 수법도 잔혹해졌다”라고 지적하는 등 사건 자체의 발생과 그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전달했는데 다른 지면에서 대안을 다루는 데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향신문은 최근 3건이나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원인으로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분위기와, 실업, 경제난에 따른 생활고 등을 제시하며, ‘묻지마 범죄’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봤다. ‘무한경쟁·사회적 무관심 속 낙오자 양산, 분노 풀어줄 장치 절실’ 기사(8월24일자), 강덕지 범죄심리 전문가와 연상호 영화감독 간의 대담(8월30일자)에서 역시 승자독식을 강조하는 경쟁시스템을, 즉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했지만 경찰의 처벌대책 외에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벌이는 무분별한 범죄와 그로 인해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피해 역시 결국 사회적 갈등의 한 단면이다.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책임이 언론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향신문의 흉악 범죄 사건 보도를 살펴보면서 각계 전문가들의 심층 분석과 외국의 사례 등을 포함한 실효성 있는 대책들을 함께 전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다. 범죄의 재발방지와 관련해서도 지난 22일 경향신문이 다룬 ‘전자발찌 논란’과 같이 ‘화학적 거세’ ‘범죄자 신상공개’ 등 각종 제도의 기능과 그 실효성에 대한 분석을 담은 후속보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표창원 교수가 27일자 시론 ‘묻지마 범죄, 피해자에게도 관심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언론에서조차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실질적인 제도와 지원책에 대한 논의는 부실해 보인다. 범죄로 인한 피해의 몫을 오직 개인들이 떠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향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언론은 범죄를 사회적으로 처벌하는 일이 아니라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의 갈등을 풀어가는 역할을 해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