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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칼럼]기자들은 '행파라치'에게 배우라


황용석|건국대 교수·언론홍보대학원



신문을 보고 당혹스러울 때는 기자들이 취재원의 관점과 시민의 관점을 혼동할 때이다.

얼마 전 모 경제지는 ‘인천시, 전국구 행파라치 A씨에 보상금 지급 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요지는 대략 이러하다. 전국을 돌며 행정기관의 부조리를 신고하고 상금을 타가는 거물급 ‘행파라치’가 인천에 출몰했다는 것이다.

A씨는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 보상금을 목적으로 전국 지자체를 돌면서 공무원 부조리를 캐는 대학생으로, 깨끗한 공직사회를 위해 만든 제도가 일부 행파라치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 골자다.

A씨가 신고한 ‘부조리’는 종합민원실의 민원 창구 담당 공무원에게만 주어야 하는 민원수당 2만원을 인천시가 민원실 소속 공무원 전원에게 지급했다는 내용이다. 인천시 공직윤리위원회는 A씨의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최근 5년간 공무원들에게 부당 지급된 민원 수당 580여만원을 환수했다.

또 조례에 따라 이 중 30%인 170여만원을 A씨에게 지급했다. 이 기사는 A씨를 ‘등록금 마련을 위해 힘든 아르바이트에 신음하는 또래들과 달리 편안한 돈벌이를 노리’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A씨가 기사가 묘사하는 것처럼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통해 정당한 방식으로 공공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직 부조리를 발견했다.

정보공개청구제도는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더 많은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서 국정운영에 국민을 참여시키기 위한 것으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다.





그가 받은 보상체계 역시 합법적이긴 마찬가지이다. 설사 그가 보상금을 목적으로 한 영리적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불법이나 유해한 행동을 하지 않은 이상 그에게 도덕적 비난을 하는 것은 과하다.

오히려 이 ‘행파라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부조리를 조사하는 것은 탐사보도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반면 요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언론의 상황은 어떠한가?

속도와 양의 경쟁에 몰려 보도자료를 단순히 옮기는 발표저널리즘이 넘쳐나고 있고 인터넷 포털의 인기검색어를 쫓아 타사 기사를 카피하는 ‘기사 어뷰징’이 만연하는 것을 보면서 발품을 파는 취재가 점점 줄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기자들이 A씨의 행동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또한 A씨의 행동은 공공정보 개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이미 해외 선진국의 정부들은 공공정보 개방을 가장 중요한 정책의 하나로 삼고 있다.

미국정부는 ‘국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투명하고 열린 기관’으로 정부를 정의내리고 있다. 정부2.0(Gov2.0)이라 불리는 공공정보의 개방과 용이한 접근성을 제공해서 국민을 국정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는 공공 데이터공유 허브인 ‘data.gov’ 사이트를 만들어 여러 기관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공공정보를 통합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영국정부의 경우도 ‘data.gov.uk’ 사이트를 통하여 7000여개의 공공정보를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호주정부는 6월에 모든 정부 기관의 공공 정보 개방에 관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기준 및 절차 마련을 위한 8대 준수 원칙을 제시했다.

이들 국가의 공공정보 개방정책의 이면에 언론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발로 취재하는 기자라면 이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테지만, 아쉽게도 우리 언론보도에서 이를 요구하는 기사는 보기 힘들다.

우리 정부도 공공정보 개방과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정보화진흥원 내에 ‘공공정보활용지원센터(www.pisc.or.kr)’를 개소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data.go.kr’도 구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아는 기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언론들이 ‘행파라치’를 비판하기에 앞서 언론 스스로의 역할을 되새길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