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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칼럼]미디어와 사회적 자본

정인숙 | 경원대 교수·신문방송학


복고풍의 노래와 댄스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이 최근 복고적 정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때문일까.
물질 성장과 사회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 힘이 부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문화 지체의 피로감을 따뜻하게 위로받고 싶어진 것일까.
아니면 불신이 난무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열정을 쏟아내는 가수들의 진정성을 보며 사람들이 쉽게 감정내려놓기를 하는 것일까.





미디어학자 입장에서 이즈음의 복고 열풍은 하버드대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이 말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 대한 대중의 갈구가 아닌가 해석해본다.

퍼트남은 2000년에 그가 쓴 저서 <나홀로 볼링>에서 미국 사회에 혼자 볼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하며, 그것을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 줄어들고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진단하였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 구성원들을 연결시켜주는 결속 자본으로서, 그것은 물질자본과 인적자본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국가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자발적 연대 또는 사회적 연결망이며, 신뢰와 도덕심을 자라나게 하는 메커니즘이자, 민주주의의 성공을 가져오는 핵심 요인이라고 퍼트남은 주장하였다.

복고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가수들의 진정성에 대한 열광, 그것은 곧 사람들의 사회적 자본에 대한 갈구이자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본 결핍을 의미하는 현상은 아닐까. 미디어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결속되고 미디어를 통해 연대를 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미디어의 긍정적 연대 기능과 함께 부정적 기능 역시 확대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의 소셜 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차갑고 냉혹하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과 젊은이들의 집단자살은 우리의 소셜 커뮤니케이션의 병든 단면을 보여준다. 한창 미래와 희망을 꿈꾸어야 할 젊은이들이 자살 사이트를 찾아 낯선 타인과 집단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것은, 개인의 우울증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본 결핍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물질자본과 인적자본의 축적과 세계화에만 전력 질주한 나머지 사실상 우리 국민의 가장 큰 국가자본이었던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온 측면이 있다.

미디어가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미디어 정책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 통신비 1000원 인하, 수신료 1000원 인상과 같은 미디어의 경제적 이슈들도 중요하지만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자본의 확충에 국가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방통위가 지난 5월에 발표한 ‘소셜 플랫폼 기반의 소통·창의·신뢰의 네트워크 사회 구현 전략’은 그런 측면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미래지향적 정책 방안이라는 점에서 크게 반길 만한 일이다. 특히 사회자본 형성 기반으로서 신뢰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정책방안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한가지 정책 제안을 하자면, 국가의 커뮤니케이션 정책 수립에 책임이 있는 방통위가 ‘사회적 자본 지수’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했으면 한다.

미디어의 다양성 지수나 경쟁상황평가 조사를 하듯이, 우리 사회의 각종 미디어들이 사회자본 형성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사회자본력은 어느 정도인지, 사회적 자본의 변화와 소셜 커뮤니케이션의 안전도 변화 추이를 면밀히 조사하여 매년 발표한다면 의미있는 국가통계자료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