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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칼럼]황색 미디어 시대

김종배 | 시사평론가


부쩍 늘었다. 아이돌 스타의 근황을 살피고, 그들을 키워낸 연예기획사 대표의 수완을 조명하고, 흘러간 할리우드 여배우를 인터뷰한다. 팬 투표 1위 사실을 전하고, 댄스 비법을 탐구하고, 연줄을 살핀다.

너나 할 것 없다. 보수·진보의 구분이 없고, 온·오프라인의 차이가 없다. 대다수 미디어가 앞다퉈 연예뉴스에 목매단다. 온·오프라인 신문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이트에 연예 섹션을 신설하고, 보수·진보 신문 가리지 않고 연예 기사를 전진 배치한다.


대세다. 트렌드를 넘어 바람이다. 연예뉴스는 미디어의 킬러 콘텐츠요, 뉴스 시장의 블루오션이 됐다.

달리 살필 필요가 없다. 이유는 ‘장삿속’이다. 뉴스를 접하는 창구가 인터넷(포털)으로 집중된 후 트래픽 양은 미디어의 위상이 됐고 수입의 원천이 됐다.

그래서 어느 미디어는 연예뉴스를 전진배치한 덕에 뉴스사이트 랭킹이 올랐다고 자랑하고, 어느 미디어는 트래픽에 연동되는 쪽광고 수입에 흐뭇해한다.

탓하지 않으련다. 미디어 광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반면 미디어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에서 ‘장삿속’은 도덕의 영역이기 이전에 삶의 영역이기에 포용은 못해도 이해심까지 아낄 필요는 없다.

아울러 연예계가 삶의 일부가 돼 버린 시대풍조를 부정할 수 없다. 보도에 성역이 없듯이 터부 또한 없다면 연예뉴스도 하나의 미디어 콘텐츠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탓해 봤자 소용없다. 아무리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아봤자 더 심해질 게 분명하다.

종편이 개국을 하고, 종편이 생산한 콘텐츠가 신문에서 ‘재활용’되는 날이 오면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종편을 앞세운 오프라인 신문사는 내친김에 내달리려 할 것이고, 다른 신문사는 기를 쓰고 쫓으려 할 것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연예뉴스의 양이 아니라 연예뉴스를 다루는 방식이 문제다.

다를 바가 없다. 이른바 ‘황색언론’과 자칭 ‘정도언론’에 차이가 없다. ‘황색언론’이 미녀 아이돌 스타의 8등신 몸매를 훑을 때 자칭 ‘정도언론’도 눈을 게슴츠레 뜬다. ‘황색언론’이 연예인의 신변에 몰두할 때 ‘정도언론’도 잡사를 응시한다.

‘황색언론’이 스타의 ‘수다’에 ‘폭로’란 수식어를 달 때 ‘정도언론’도 ‘토로’라는 동의어를 붙인다. ‘황색언론’이 TV화면 보고 기사 쓸 때 ‘정도언론’도 리모컨을 돌린다.

감시가 없고, 분석이 없고, 고발이 없다. 파수견의 사나운 눈매는 온데간데없이 애완견의 하트 눈빛만 내보인다.

장자연씨의 유서가 던진 메시지를 단서 삼아 연예계 이면을 들추려 하지 않고, 분쟁이 발생한 것을 매개 삼아 연예계 사슬을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두려워서일까? 트래픽을 높이려면 스타에 집중해야 하는데 스타에는 팬클럽이 따라 붙고, 팬클럽은 무시 못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날로’ 먹기 위해서일까? 어차피 ‘기본’은 하는 연예뉴스이기에 굳이 인건비 부담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이유가 뭐든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황색’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양의 ‘과도함’을 부각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황색 기사’의 양이 늘어날수록 사회의 그늘진 구석의 ‘박탈감’과 ‘기회비용’에 대한 아쉬움을 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바람은 불지 않는 게 낫다. 그것이 싣고 오는 게 ‘황사’뿐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