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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칼럼] 길잃은 MBC '동네북 신세'


김 평 호|단국대 교수·언론영상학부


요즘 문화방송이 세간의 동네북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MBC의 얼굴을 그나마 지켜주던 을 망가뜨리는 인사 파동부터, 듣고 보기 민망한 논란을 빚으며 결국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 PD가 교체되는 사태까지….

또 전임 사장이었으면서도 후배들 욕보이기를 서슴지 않으며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엄기영씨부터, 재벌과 신문사 간부가 돈으로 정치권과 유착하고 검사들을 관리하는 비리가 공공적 관심사가 아니라며 삼성 X파일을 보도한 MBC 기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까지….



이 모든 일이 다 문화방송만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은 아니지만 요즘 MBC는 꼭 길 잃은 철부지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다들 기억하다시피 이런 사태는 꼭 1년 전 이맘때부터 시작됩니다. 작년 3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우룡 당시 이사장은 이렇게 뽐냅니다.

‘엄 사장이 나가면서 이제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위한 8부 능선은 넘어섰다. 19개 지역 MBC·자회사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 큰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다. (내가) 청소부 역할을 해라 (하니까) 김재철은 청소부 역할을 한 거다’ 등등.

이후 김 사장은 이런 말을 한 김 이사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더니 그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전임 김 이사장 말이 틀린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태가 말해주는 것은 창피한 이야기지만 MBC와 김 사장은 하수인 정도의 존재라는 겁니다.

말할 나위 없이 언론기관입네 하면서 권력의 하수인 노릇 하는 쪽이 문화방송만은 아니지요.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의 소위 주류매체를 가르자면 대체로 조·중·동 같은 권력집단, 그리고 그 하위집단인 KBS, MBC, SBS(이하 KMS)로 나눠볼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중·동은 권력집단이라는 점에서, KMS는 하수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두 집단 모두 언론이라는 이름에 부합하지는 않지요.

방송이 가는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왜 KMS는 하수인 정도에 머무르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김인규 사장과 KBS, 김재철 사장과 MBC가 보여주듯 KMS의 리더십과 그 리더십이 구성한 간부집단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집단인 조·중·동은 권력과 거래할 수 있고 권력은 그래서 이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몰라도 자신들의 명시적인 또는 묵시적인 명령과 지침을 잘 따르는 하수인 정도인 KMS를 권력이 내심 언론으로 인정하지는 않겠지요.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지는 사실 비상한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방송은 대체로 슬픈 피에로의 역사 속에서 오래 버둥거려 왔습니다.

그런 비참한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몸부림이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동조합 운동으로 나타났고, 문화방송이 오늘 이만큼의 시민사회적 위상을 가지게 된 이면에는 노조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지금 이런 문화방송의 건강한 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듯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게 다 MBC만의 잘못은 아니지요. 이명박 정부로 대변되는 지금의 권력집단이 이 일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지요. 그러나 한편 이 일의 또 다른 책임자는 대한민국 구성원 우리 모두입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이 70%가 넘는 나라, 정부 발표에 문제를 제기하면 빨갱이 수준으로 몰아가는 사회,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무너져내리면서 전 세계에 엄청난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데도 강원도에 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도지사 후보자, 자식들에게 보상금 타주면 좋지 않으냐며 발전소 건설에 찬성하는 지역민들, 사회는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라는 생각을 최하위 수준으로 10대들에게 가르치는 나라.

이런 곳에서 MBC가 초토화되어 가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하시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