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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혐오표현 규제는 사회적 평등의 출발점

SBS는 지난 5월22일부터 3회에 걸쳐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에 관한 연속 기획 보도를 방송했다. 방송 뉴스라는 제약 때문에 긴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려웠지만, 일상 속의 차별, 성별 정정이라는 법적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간결하게 잘 짚어냈다. 불행하게도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여전히 성소수자 존재를 부정하는 악의적 혐오 표현으로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몇몇 드라마에서 호기심을 끌기 위한 소재로 등장하거나, 올해 초 변희수 하사의 경우나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사건처럼 사회적 논란거리로 소비되기 일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의 트랜스젠더 인권 수준이 낮다는 것을 알리는 보도가 오히려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을 양산하는 계기가 되는 일이 반복되어 오고 있다. 


트랜스젠더 인권 수준이 낮은 데는 이처럼 일상 속의 차별 문제만큼이나 혐오표현 자체가 큰 원인이 된다. 혐오표현이 최근 들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가 점점 큰 이슈로 부상하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일상화가 한 요인이다. 특정 개인을 지정하여 공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최근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단순히 악의적 메시지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적인 합성사진을 제작하는 해시태그 릴레이 놀이의 대상이 되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 바 있다. 피해자의 과거 잘못을 구실로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결국 이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명백히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혐오표현 행위이다. 


사이버불링이라고 통칭되는 이러한 온라인상의 집단 괴롭힘 행위는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이뤄지기에 피해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타격으로 남게 된다. SNS가 이를 조장하는 기술적 특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즉 특정 개인에게 다수가 한번에 메시지를 보내고, 악의를 표현하는 행위들을 해시태그 등으로 연결하여 세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점이 피해를 가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 가능성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이다. 


게다가 이러한 괴롭힘 상황에서 피해자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후적으로 법과 제도에 의존하여 구제받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 성폭행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가 성매매산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에 대한 연대 메시지보다 악의에 찬 사이버불링 피해를 더 입은 사례에서처럼, 피해자의 취약한 위치가 법제도적 절차를 밟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괴롭다면 트위터 같은 SNS를 하지 않는 것이 대안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사이버불링 피해자에게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해당 공간을 혐오표현의 공간으로 내버려 두는 것은 문제가 된다. 온라인상에서 기록으로 남아 전시되는 말들이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으로만 가득 찰 때, 이 상황이 당연시되고 불의가 진리인 양 고착화될 수도 있다. 혐오표현에 대항하는 표현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고, 여기에는 당연히 소수자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공간도 포함된다. 혐오표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피해자가 구조화된 불의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이 제일 큰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시급하다. 혐오표현 규제 문제는 개인의 말을 규제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피해자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회적 차별 구조를 바꾸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