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한국여성민우회는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언론은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라는 제하의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특히 언론이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사건과 무관한 이야기를 전달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2차 피해 개념이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 요강’에 담기기도 했지만, 이러한 보도 준칙은 여전히 현장의 기자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 2차 피해는 피해자가 사회적 시스템과 주변 환경 때문에 다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현재, 언론이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주요 행위자가 되고 있다. 이번 보도에서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사건과 무관한 유명인이나 고인의 지지자가 개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 작성한 글을 무차별적으로 중계하는 데 있었다. 누가 말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주목하면서 ‘누구’에 초점을 두는 것은 결국 진영 논리에서 이 사안을 부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개인들 간의 설전 또는 정치적 진영 간의 공방을 중계하는 보도 양태는 이 사건의 원인과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가려버린다.

 

언론사 입장에선 이런 의견들이 주목을 끌어 뉴스 소비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고려했을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자신과 같은 관점의 뉴스에 대한 선호도가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사 역시 이런 특성을 이용해 특정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맞춤형 뉴스를 생산하는 일이 늘고 있다. 누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를 부각하는 편가르기 방식으로 뉴스를 제작하면 지지자와 반대자 양측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므로 언론사 입장에선 이익 실현이 쉬워진다.

 

이번 사안에서 언론이 수행해야 할 공적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받는 현실이 상존하고, 수십년간 법제도 정비 등 다층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반복될 때,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해결해내야 할지를 탐구하는 데 있다. 현재의 법적, 제도적, 문화적 시스템에서 어떤 결함이 존재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인식 속에는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문제에서 성적 수치심, 굴욕감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단지 감정적인 차원의 것인 양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참는’ 혹은 ‘예민한’ 등의 표현이 이런 사안에 등장한다.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권력관계에 기반을 둔 성적 침해이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 의사소통 오류이거나 사소한 감정적 갈등 문제가 아니다. 성차별적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며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문제이다.

 

그간의 경험을 기록한 책 <김지은입니다>에서 김지은씨는 자신이 노동자라는 점,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어야 피해생존자의 일상이 회복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성 노동자는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그의 글은 해고에의 두려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 미래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인권 침해를 감수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을 동료 노동자가 아닌 ‘직장의 꽃’ 정도로 여기고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것처럼 대하는 인식이 이 문제의 근본에 있다. 언론은 발 빠르게 여성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지자체를 모범 사례처럼 소개했다. 문제는 여성 비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 비서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에 있음에도 말이다.

 

무엇이 보도되어야 하며, 어떤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보인가를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주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 언론은 기존 보도의 가치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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