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의미_소비

라이프 매거진, 디스커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우리에게 친숙한 미디어 브랜드들입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로고가 들어있는 옷을 한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업은 잡지,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하지만 의류 브랜드로 라이선싱되어 많게는 매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작 사업을 시작한 나라에서는 하지 않던 의류사업을 우리나라에서 시작하여 성공한 것을 보고 누군가는 원래 유명한 패션 브랜드인 줄 오해해서 그랬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보다는 옷이라는 물건보다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의미를 가져다주기에 각광받고 있다 하는 것이 더욱 옳은 설명입니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주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던 미지의 곳을 탐험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온 미디어 브랜드로서의 ‘정신’이 로고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지요.

 

인류의 역사에서 면포와 비단은 오롯이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내던 고단함이 필연적이기에 식량과 더불어 화폐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옷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상징이기도, 유산의 목록이기도 했음을 설혜심 교수의 책 <소비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과 화학산업의 발전을 거치며 대량생산의 방법이 개발되었고, 글로벌 협업과 인공지능까지 추가된 지금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자동화까지도 이루어내었습니다. 누구나 품질 좋고 비싸지 않은 옷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브랜드의 표식이 품질의 징표나 보증의 의미와 같은 기능만 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워집니다.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를 아시는지요? 엄청난 팬덤을 지니고 있어서 쓰레기도 슈프림 로고를 찍어서 팔면 다 팔릴 것이라는 농담마저 있습니다. 농담만이 아닌 것이 2016년 벽돌에 로고를 찍어서 30달러에 판매했는데 완판되었고 그 후 2000달러까지 웃돈이 붙어 거래되었습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거리의 친구들을 점원으로 고용해서 뉴욕 맨해튼 소호에서 보드와 옷을 파는 가게로 시작한 브랜드는 1994년 창업 이후 전설이 되었습니다. 주류의 문화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정신은 빨간색 바탕에 푸투라 서체로 ‘Supreme’이라는 브랜드를 새긴 단순한 디자인으로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 로고는 전쟁, 인종, 계급, 외모지상주의 등 모든 지구상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텍스트 메시지와 이미지로 표현해온 미국의 개념예술가 바버라 크루거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1987년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는 작품으로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을 표현한 작가를 오마주한 브랜드가 주류 문화에 반하는 메시지로 출발한 후 이제는 가장 강력한 상업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Supreme’을 검색해 보면 기발한 컬래버레이션들이 만발합니다. 루이뷔통이나 나이키, 노스페이스 같은 패션 브랜드들과의 협업은 기본이고 밴드 에이드와 인스탁스 필름뿐 아니라 일회용 비닐 백인 지퍼락을 넘어 심지어 오레오와 함께 빨간색 쿠키를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 이쯤 되면 로고를 파는 것이 본업이 된 듯합니다. 그 모든 것은 슈프림의 독립적인 비주류의 정서를 전달하는 로고의 힘으로 이를 저는 ‘의미 소비’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산업의 혁명이라 불리는 혁신은 질 높은 상품의 보편적 제공이라는 인류의 꿈을 이루어내어 사람들은 더더욱 물성보다 의미를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소셜미디어 속 각자가 지닌 물건 하나하나의 의미가 나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브랜드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들의 합이 나를 이룬다면 나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궁금해집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