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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젊은 정치인 앞의 벽

경기도 성남시의회 이숙정 의원이 지난 1월27일 판교주민센터에서 벌인 일은 변명할 여지 없이 잘못한 일이고, 국민의 호된 질타는 당연한 것이며, 지지자나 유권자들이 느꼈을 분노와 실망감도 당연한 것이다. 이의원 본인도 이번 일로 크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겠지만, 잘못한 일은 잘못한 일이다.

나는 항상 '보수측은 사고도 많이 치고 마무리도 잘한다. 진보측은 사고는 잘 안 치지만, 치고 나면 데미지 컨트롤을 잘 못한다'라고 생각한다. 보수는 사고 치는 데 이력이 나서인지, 잘못을 저지르면 얼른 사과하면서 얼렁뚱땅 뒷감당을 잘 한다. 하지만 진보는 생리상 도덕적 무오류에 집착하는 존재이고 스스로에게 잘못의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에 대한 면역력이 형편없이 낮다. 그 때문에 일단 잘못이 벌어지면 크게 당황하고, 머리를 숙이기 싫어하며, 결국 가서는 안 될 비상식적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개체에서 작은 병원균이 곧잘 큰 병으로 확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이숙정 의원 처지에서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한 최선의 뒷처리는 무조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뿐이다. 설명할 필요도, 변명할 필요도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설령 이의원이 보기에 당시 상황이 지금 회자되는 것과는 다르고 이에 따라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런 심정을 토로하는 것은 단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에 나와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해당 직원과 가족과 주민센터를 찾아가서 몸을 바닥에 붙이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모두 이의원이 정치에 나서면서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일 것이다. 모두 이의원의 주인들이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이 몇 자만 잊지 않아도 세상을 겸손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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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관심은 판교주민센터 사건이 아니다. 나는 주민센터의 사건 자체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숙정 의원이 기자와 나누었다고 하는 말에 더 큰 관심이 있으며,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대화 중의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차라리 시의원 안하고 정치를 그만두는 것도 각오하겠다. 나도 지금까지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공무원들 모두 나를 힘들게만 하고 괴롭히려만 한다. 일부에서는 민주당 쪽 입장만 따르라고 하면서 견제하려고 한다. 나도 지쳤다. 큰 미련도 없다."

이 부분에서 이의원은 주민센터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조금 다른 점을 말하고 있다. 이게 사건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일단 제쳐놓도록 하자. 이의원의 이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이의원이 지역 정치 현장에서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의원보다 먼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지방의회 의원이 있다. 그는 이의원보다 더 젊은 나이에, 이의원의 지역구보다 훨씬 보수적인 지역에서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선거를 치러 이기고 기초자치단체 의원이 되었다.

뜻을 품고 정치를 시작하여 이제 그 뜻을 펼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보람된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의원이 되고 나서 겪은 것은 좌절과 막막함 뿐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뻘 되는 동료 의원들이 진행하는 회의에는 논리가 통하지 않았고, 역시 아버지뻘 되는 공무원들은 대접해 주는 척하며 무시했으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지역 사회에서도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뽑힌 주민 대표로 보아 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정당한 이야기는 외면되었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세상 물정 모르는 치기로 폄하되었다.

이 의원은 큰 뜻을 품고 자신의 인생을 걸며 의정 생활을 시작했으나, 1년 반만에 사퇴서를 내버리고 사라졌다. 정치를 시작할 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현실의 벽은 그렇게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지방의회로 돌아갔다. 지역 사회의 설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많이 생각한 결과였다. 그는 의회를 떠난 며칠 동안 곰곰히 생각한 끝에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다 이룰 수는 없다, 이상을 조금씩만 현실화해 나가는 것이 바로 발전이다'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깨달음을 '자신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지금은 국회의원이다. 그의 정치적 지향점은 성남의 이의원과 다르고 이 글을 쓰는 나와도 매우 다르지만, 그렇게 젊은 나이에 풀뿌리 현장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올라온 정치 역정은, 과거에 보스로부터 낙점을 받거나 검사나 판사나 기자를 해야 낙하산을 타고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한국 정치 문화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회한 늙은이들과 그들이 만든 부조리한 관행이 진을 치고 있는 실제 정치 현장에서 의욕으로 충만한 젊은 정치인들이 만나는 벽은 이렇게 높고 두텁다. 이숙정 의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소수 정당, 또 더구나 진보 성향의 정당 소속이어서 그 벽은 몇 배나 높고 견고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벽 앞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당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방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모두 나를 환영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실은 반대라고 보아야 맞다.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다른 당 소속 동료의원들조차 모두 나를 괴롭히게 마련이다. 내가 일을 잘 하려면 할수록 그렇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게 진보라는 멍에를 스스로 둘러 쓴 젊은 정치인이 현실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벽이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정치를 시작할 때 가졌던 사명감으로 벽을 넘어야 한다. 정치판이 어떤 곳인지는 안에서 지지고볶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범죄자들, 파렴치한들, 남의 재산을 훔쳐내고도 오히려 주인을 협박하는 것들, 유권자를 등쳐먹던 것들이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며 거들먹거리고 중진 행세를 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이렇게 낯이 두꺼운 사람들이 누가 더 낯이 두꺼운가를 놓고 싸우는 데가 정치판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코메디언 이주일조차 견디지 못한 데다.

이런 데서 싸우며 살아 남아 뜻을 펴려면 느긋하게 보고 호흡을 길게 가지는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자신을 죽이는 법'부터 배우며 시작해야 한다. 한 술 밥으로 배 부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한 발짝 달리고 나서 결승선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의원은 지쳤고 미련도 없으며 정치를 그만 둘 각오도 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지쳤다는 게 아니고, 성남시 의원으로 8개월을 지내면서 지쳤다는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온 심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아직 그런 말을 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그런 말은 위로는 아부하고 아래로는 군림하는 반편 같은 상사의 등살에 못이겨 회사를 때려치우는 회사원의 입에서는 나올 수 있어도, 출마와 당선이라는 정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유권자의 뜻을 떠안기로 약속한 젊은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말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일 것이다. 잘못을 거듭 저지르고 국민의 질타를 받아도 유권자 핑계를 대며 기를 쓰고 자리에 붙어 있는 기성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마당에, 그런 꼴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면 좋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주민센터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으로 의원직을 사퇴한다거나 정치를 그만 둔다면 개인의 결의에 따라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라 지치고 힘들어서 그만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젊은, 더구나 진보적인 정치인에게 기성의 체제가 구축한 일상은 하나하나가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뜻을 간직하며 멀리 보고 긴 호흡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숙정 의원뿐 아니라 비슷한 위치에 있는, 혹은 있게 될 모든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일이다. 기성의 체제에 안주하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젊은 정치인의 피곤한 싸움은 당선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그 싸움이 판교주민센터에서 벌어진 싸움과는 성격을 달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