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호스니 무바라크 밑에서 전횡과 부패에 시달린 이집트 국민들이 총궐기하여 민주화 투쟁에 나섰다. 상황은 계속 진행중이고, 세계는 한때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무바라크 초상화를 뜯어내고 있는 시위대 

애초 이집트 사태가 처음 보도될 때, 대통령으로 무바라크가 거론되는 것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언제 적 무바라크가 아직도 대통령인가?' 하고 말이다. 마치 가봉의 대통령이 봉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언제 적 봉고가 아직도 대통령인가?' 하고 느끼는 것처럼.

아프리카 중서부 국가인 가봉은 42년 동안 한 사람이 집권했다. 엘 하지 오마르 봉고 온딤바는 1967년에 서른 두 살의 나이로 권좌에 오른 뒤 42년 동안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봉고의 재임은 2009년에 그가 74세로 죽은 뒤에야 끝났다. 이 정도면 선거라는 추인 방식을 거치는 왕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집트도 비슷한 신세에 처해 있다. 현대판 파라오라 할 호스니 무바라크는 전임자 안와르 엘-사다트에 의해 부통령으로 임명된 뒤, 1981년에 사다트가 암살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리고 국민의 저항을 받는 지금 이 순간까지 30년 동안 집권하고 있다. 현재 82세인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다. 만일 지금의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지 않았거나 별다른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끝난다면 무바라크의 집권은 그가 죽어야 끝날 것이다.

90% 지지율의 실상은?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 현대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형식상으로만 보면 그가 매번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1인 장기 집권 체제가 늘 그렇듯, 선거의 제도와 내용이 일반 민주 국가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최근까지 이집트의 대통령 선거는 선거가 아니라 국민투표(referendum)였다. 복수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하여 국민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한 후보자에 대한 찬반 투표 방식으로 대통령 선출이 이루어졌다. 물론 한 후보자란 무바라크다. 1987년, 1993년, 1999년의 대통령 선거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게 황당하다고 느껴진다면, 비록 간선이긴 하지만 한국도 70년대에 찬반 투표를 통해 박정희 장기 집권을 실현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5년까지 이집트 헌법은 의회가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고 이에 대해 국민이 찬반 투표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무바라크가 수십 년 동안 의회를 장악해 온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무바라크에 의한, 무바라크를 위한, 무바라크의 선출 방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는 다른 후보자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선거 제도 아래에서 국민들의 투표 참가율은 형편없이 낮았다. 예컨대 1999년의 찬반 투표에서 유일 후보 무바라크는 93.8%의 엄청난 찬성을 받아 가볍게 재선되었지만, 이 지지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바라크가 재임을 거듭하도록 만든 찬반 투표에서 투표율이 10%를 넘은 경우는 없었다.

비민주적 대통령 선출 제도는 2005년이 되어서야 수정되었다. 국내외의 압력 때문이었다. 2005년 대통령 선거는 개정된 헌법에 따라, 무바라크 체제에서 처음으로 복수의 후보자가 출마하는 실질적인 선거 형식으로 치러졌다.

민주적 제도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담고 구현하는 그릇이지만, 형식적으로 제도가 갖추어졌다고 하여 저절로 민주적 내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로는 민주 선거의 꼴을 갖춘 이집트의 2005년 선거가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치루어졌다고 평가 받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 관련 기구는 물론이고 주요 언론사들도 대부분 무바라크의 손 안에 들어 있었다. 관영 신문 세 개와 텔레비전을 비롯한 언론은 무바라크 체제의 선전 메시지를 그대로 복사하여 전파하며 국민을 세뇌했고, 선거 관리 기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무바라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공무원들은 무바라크에게 투표하도록 강요 받았으며, 곳곳에서 매표가 벌어졌다.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이 무바라크에 대거 투표했으며, 복수 투표도 등장했다. 대통령에 출마하여 무바라크에 도전한 아이만 누르에게는 처절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 문서 위조 혐의로 5년형에 처해졌다.

이 선거에서는 무바라크의 아들이며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가말이 무바라크 캠프의 선거 운동을 지휘했다. 가말은 이집트의 저소득층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아, 일자리 4백만 개를 창출하고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하며 유권자를 현혹시켰다.

선거 결과는 어떠했는가. 공식 발표에 따르면, 9월7일 치러진 선거 결과 무바라크는 무려 88.6%의 지지로 또다시 선출되었다. 2위 득표자인 아이만 누르는 7.3%, 3위는 2.8%를 얻는 데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의 상당 부분은 불공정한 선거 진행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어쨌든 투표 참가자 중 무바라크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이것은 이 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과거의 찬반 투표에서 지극히 낮은 투표율을 보여 주었던 이집트 국민들은 이 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바라크 체제 최초의 복수 경쟁 선거인 이 2005년 선거의 공식 투표율은 22.9%에 지나지 않았다. 야당이 집계한 투표율은 시골 지역에서 15~20%, 도시 지역에서 3~5%에 불과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지만, 어느 경우나 피는 되도록 적게 흘릴 수록 좋다. 현재 이집트 국민 대다수가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무바라크의 퇴진을 바라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렇게 무바라크 체제에 반대하고 염증을 느끼는 이집트 국민들이 5년 전의 선거에서 투표에 제대로 참가했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치는 희생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무바라크의 재임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더라도, 이집트 정치 지형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며, 이는 이 나라의 민주적 진행에 결정적 열쇠가 되었을 것이다.

병도 암살도 쓰러뜨리지 못한 통치자

한편, 찬반 투표든 복수 경쟁이든, 선거만 했다 하면 9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만들어 내는 파라오 무바라크의 신통력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다음과 같은 농담이 나돌았다고 한다:

무바라크를 만나기 위해 이집트에 온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무바라크의 인기가 높고 손쉽게 재선에 승리한 것에 감명을 받았다. "무바라크, 나도 이제 곧 재선에 나가야 하오. 당신의 선거 참모들을 워싱턴으로 보내 내 선거 운동을 도와주지 않겠소?" 무바라크는 좋다고 대답하고 자기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내 클린턴을 돕도록 했다. 선거가 끝난 뒤 표를 집계한 결과, 미국인의 90%가 호스니 무바라크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에서는 이런 농담도 유행이었다고 한다:

"무바라크에게 최고의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다". 조용조용히 자신과 식솔을 배불려 가며 권력을 누리기를 원했던 무바라크에게 지금은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최악의 나날들일 것이다. 더구나 그 무언가가 다름 아닌 국민의 저항임에랴.

그러나 무바라크는 끈질긴 인간이다. 전임자 사다트를 끌어내린 암살도 무바라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무바라크는 지금까지 여섯 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많으므로 심각한 노환이라도 걸릴 만한데, 운명은 국민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2010년 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수술을 받으러 간 무바라크가 수술 도중 죽었다는 소문이 떠들썩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이 소문으로만 나돌고 즉시 확인되지 않은 것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의 건강에 대한 보도는 강력히 통제되고 있고 이와 관련한 기사를 쓰기만 해도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집트 국민들은 누구나 이 늙고 병든 집권자가 곧 죽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집트의 칼럼니스트 이산드르 엘 암라니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는 2010년 봄 전체를 병상에 누워서 보냈다. 당시 택시 운전사에서부터 정치인, 외국 첩보원에 이르기까지 카이로의 모든 사람은 무바라크가 몇 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영 텔레비전 카메라를 하이델베르크의 병실로 들여 온 뒤 그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합니다. 치료가 끝나는대로 곧 조국으로 돌아가, 신이 나에게 맡긴 임무를 다시 수행할 것입니다."

                                                                    2010년 독일 병원에서의 무바라크


그리고 그는 정말 꿋꿋하게 살아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2011년의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체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두 징그럽게 명이 긴 인간이 아닐 수 없다.

병도, 암살도 쓰러뜨리지 못한 무바라크. 신도 두려워하는 이 철권 통치자가 국민의 봉기에 의해 쓰러질지 궁금하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으니, 이집트의 신은 국민의 민주화 투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피를 거두어 가며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바라크가 쫓겨나든 다시 끈질기게 살아남든, 스스로의 힘을 생생하게 확인한 이집트 국민의 경험은 이집트의 민주주의에 큰 거름이 될 것이다. 다만 좀더 일찌감치, 좀더 수월한 방식으로 민주 혁명을 이루어 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 사진 출처: AP, 이집트 관영 텔레비전 정지 화면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