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촛불 괘씸죄 예산단절…힘들어도 시민의 자산인데 지켜야죠”
RTV는 국내 유일의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미디어 접근) 전문 채널이다. 퍼블릭 액세스란 언론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public)들이 신문·방송에 접근해(access) 자신이 직접 만든 보도·영상물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KBS가 2001년 5월 프로그램 ‘열린채널’을 신설하고 시청자 제작 영상물을 방영한 게 시초다.
그러나 KBS가 ‘열린채널’에 할당한 시간은 1주일에 30분 정도다. 수많은 시민들의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짧다. 시민사회는 지상파 방송의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2002년 위성 채널 RTV를 개국했다. 현재 전체 편성의 90% 이상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기성 언론에 발언할 기회가 거의 없는 장애인·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나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영상물이 많다.
지난달 30일 서울 구로동의 RTV 본사에서 김영철 상임부이사장을 만났다. 김 부이사장은 “최시중 위원장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지난해 2월 이미 RTV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중단될 조짐이 있었다”며 “올해 들어 지원금이 끊긴 탓에 2009년 수입은 4억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소중한 자산인 RTV를 지키는 게 당면목표”라면서도 “직원들이 자기 생계를 내팽개치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두렵다”고 털어놨다.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됐습니다. 고용 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지난해 RTV 직원은 저를 포함해 21명이었습니다. 2009년 예산의 대부분이 단절된 사실을 확인한 후에 종업원들에게 사연을 다 얘기했어요. 나까지 포함해 고용계약을 전원 해지하겠다고. 그러나 ‘정부가 사안을 정치적으로 판단해 지원금을 중단한 것인 만큼 이 채널 자체를 죽이지는 말아야 한다, 여러분 중에 자원봉사로 이 채널의 생존을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나와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10명이 남더군요. 지금 10명이 실업급여 받아가면서 일하고 있어요.”
-RTV는 사실상 100% 외부 지원금으로 운영됐습니다. RTV의 재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
“저희는 광고를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광고를 하지 말라는 정부 지침이 있는 건 아니고, RTV가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되어 있어요. 비영리법인의 장점을 살리고 싶어서 광고를 하지 않았던 거죠. 재원은 방송위원회(현 방통위)가 주는 방송발전기금의 비중이 제일 컸습니다. 예산의 70% 정도였죠. 이 돈으로 영상물을 보내는 시청자들에게 ‘방송채택료’를 지급해요.
그 다음이 스카이라이프가 주는 운영지원금인데 5억원 정도 됩니다. 세번째는 케이블로부터 받는 콘텐츠 수신료입니다. RTV가 2008년까지는 방통위가 선정하는 공익채널에 뽑혔는데, 공익채널이 되면 케이블 방송사가 의무전송을 해야 하거든요. 콘텐츠 수신료는 그 때 받는 돈입니다. 이밖에 자체적으로 외주 제작을 조금 했어요.”
-이 중에서 어떤 지원금이 끊긴 겁니까.
“방통위의 공익채널 선정에서 RTV가 탈락하면서 케이블에서 받던 콘텐츠 수신료가 중단됩니다. 그리고 덩어리가 가장 컸던 방송발전기금이 끊기죠. 방통위가 지난해 2월 출범하면서 방송발전기금을 RTV에 직접 지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다른 채널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방영하려 하면 거기에도 줘야 한다는 겁니다. RTV가 참여정부 때 혜택을 봤다는 주장이죠.
그래서 2009년부터는 방통위가 방송발전기금을 스카이라이프에 줍니다. 스카이라이프는 시청자 제작 영상물을 방영하겠다는 케이블 프로그램 공급자(PP)로부터 공모를 받은 뒤, 이들 중 몇몇을 선정해 방송발전기금을 나눠줘요. 이게 ‘PP공모제’입니다. 올해 공모를 거쳐 선정된 채널은 저희까지 6개입니다. 예전에는 RTV가 혼자 쓰던 기금을 이제 6개 채널이 나눠 갖게 되니 지원금이 줄어드는 거죠. 결국 올해 저희의 수입은 스카이라이프에서 PP공모제로 받는 4억원이 전부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RTV가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에 배정된 방송발전기금의 69%를 받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69%면 특혜 시비가 제기돼도 이상할 게 없는 수치 아닌가요.
“저희가 69%를 받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데가 우리밖에 없거든요. 현재 방송법은 의무조항으로 KBS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방송토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BS는 1주일에 30분씩 하고 있고, 다른 SO도 몇 시간 안 하기 때문에 예산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이 둘을 제외하면 남는 건 RTV밖에 없어요.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곳이 많은데 우리만 69%를 쓴다면 문제겠죠. 하지만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방송하는 곳이 RTV입니다. 사실은 기금의 80% 이상을 써야 마땅해요.”
-방통위의 공익채널 선정에선 왜 탈락했습니까.
“방통위의 공익채널선정위원회는 전문 편성 비율, 재무건전성 등 10개 항목으로 나눠 채널별로 점수를 매깁니다. 여기서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공익채널로 선정되죠. 저희와 함께 탈락한 어떤 채널이 정보공개청구를 한 덕분에 저희도 이 심사표를 보게 됐어요.
재무건전성 항목의 경우 저희는 우리나라 200여개 PP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광고를 하지 않는 곳이에요. 그러니 아무래도 다른 곳에 비해 재무건전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죠. 이 부분을 평가할 때 엉터리로 하지 않았나 싶고. 지난해 여름 촛불정국에서 우리 시청자 제작자들이 촛불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많이 냈어요. 이런 데 대한 정무적 판단이 거의 틀림없이 개입돼 있었을 것이라고 저희는 판단하죠.”
-방통위가 출범 직후인 지난해 2~7월에도 방송발전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2007년에 국회를 통과한 예산인데도 집행을 하지 않았어요. 정권이 바뀌면서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런 정도까지 갈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6개월간 시청자 제작자들한테 방송채택료를 못 줬어요.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뉴스’ ‘노동자 노동자’ ‘나는 장애인이다’ 등을 내려야 하는 상황까지 갔죠. 저희가 방통위를 설득하고, 시청자 제작자들이 항의 방문도 하고 열심히 싸우니까 6개월 만에 소급해서 지급하더군요.”
-요즘은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상물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배포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접근권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무급으로 일하면서까지 방송 채널을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요.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과 UCC는 개념이 똑같아요. 그러나 UCC는 기본적으로 포털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포털이라는 거대 자본의 상업논리에 지배당해서 접근권, 자기표현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쪽으로 변질되고 있죠.
UCC 사이트인 ‘유튜브’도 상업적으로 엽기적인 것들이 주로 유통되지, 약자·흑인·성적 소수자·장애인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은 재미가 없으니까 유통을 안 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방송의 공적구조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방송에선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룰 수 있거든요. 방송과 UCC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리할 수 있겠죠.”
-김 부이사장께서 RTV에 합류하신 것이 2005년입니다. 그때와 지금 시민들의 참여도는 어느 정도 달라졌습니까.
“RTV가 개국한 2002년부터 제가 오고 난 뒤 몇개월까지는 말이 퍼블릭 액세스 전문 채널이지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어요. 전체 편성 중에서 10~20% 정도. 재방·삼방하고 이런저런 프로그램 빌려다 틀고 그랬는데 이게 올라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유는 2가지예요. 우선 일정 시점부터 시민사회의 미디어 역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지금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갖고 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잘 만들어요. 2003~2006년 영상 매체가 발달하고 휴대폰 촬영도 확산됐잖아요. 바로 이 시점에 시민사회가 활짝 개방되면서 시청자 프로그램 숫자가 수직 상승을 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접수한 영상물을 선착순으로 방영하는 데 한두 달이 걸립니다.”
-RTV 경영이 어려워지면 시청자 제작자들도 안타까움이 클 텐데요. 시민들로부터 성금을 모금하지는 않습니까.
“경제위기까지 겹친 마당에 무턱대고 시민들한테 기부해달라고 손벌리는 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죠. 저희가 방송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을 대여해 자체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방통위의 행보대로라면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RTV의 재정난이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방통위 관료들은 PP공모제를 올해 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다른 식으로 수정하자고 해요. 제가 단언하건대 올해부터 스카이라이프 PP공모제를 통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방영해야 하는 다른 PP들은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어요. 시민 제작자들에게 방송채택료를 지급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완성도 떨어지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도 부담스럽죠.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 거의 확실시됩니다.
그러면 PP공모제를 바꿔야 하고 RTV에 맡겨야 하는데 RTV 운영위원회를 보면 전부 ‘좌빨(좌익빨갱이)’인 겁니다. 촛불집회, 광우병대책위원회 수괴들이고. 그래서 PP공모제에 문제가 있어도 이 정부 끝날 때까지 유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난의 행군을 좀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채널을 중단하지 말고 생존해야 합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직원들이 자기 생계를 내팽개치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두렵지요.”
-RTV는 작은 방송이고 인지도도 낮은데, 현 정부가 RTV에까지 관심을 보인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정부가 KBS, MBC, YTN만 문제 삼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깊숙이 들여다보면 정부 예산 들어가는 데는 하나하나 다 찾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말고 공기업도 그럴 겁니다. 사람 앉히는 문제까지. 촛불과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시시콜콜 뒤져서 지원을 끊는 거죠. 사실 RTV는 그냥 놓아둬도 되잖아요. 사람들이 RTV를 알아야말이죠. 별로 보지도 않는데.(웃음)”
지금 정치권력이 방송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장악하려 하거나 없애거나.
KBS와 MBC, YTN이 전자라면 시민방송 RTV는 후자에 해당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09년부터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던 RTV는 글자 그대로 고사할 위기에 놓였다. RTV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말 전 직원의 고용 및 연봉계약을 해지했고, 이들 중 절반이 현재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RTV주요프로그램
■ 무한자유지대 : 시민들이 자유 주제로 찍어서 보낸 영상물을 방영해주는 본격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시민이 보낸 영상물은 간단한 심의 절차를 거친 뒤 접수 순서대로 방송된다.
■ 노동자 노동자 : 지상파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노동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본격 조명하는 프로그램. 노동 현안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간 ‘정규직 0명 절망공장, 동희오토 노동자 이야기’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등을 방송했다. 20년간 노동 영상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는 ‘노동자뉴스제작단’이 기획·제작한다.
■ 행동하라 비디오로 액션V : 각 지역의 시민들이 직접 기획·제작하는 지역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10여개 지역의 40여개 단체가 지역의 현안을 생생히 전달한다. ‘지역 퍼블릭 액세스 주안미디어센터 편’ ‘대구건설노동자 영상프로젝트 <노가다 vs 노동자>’ 등이 방영됐다.
■ 다국어 이주노동자 뉴스 :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뉴스와 본국 뉴스를 이주노동자들의 언어로 전달하는 뉴스 프로그램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결성한 ‘이주노동자방송(MWTV)’이 기획·제작한다. 몽골, 방글라데시, 버마, 네팔, 러시아 등 8개 국어로 방송된다. < 자료 : RTV >
<글 최희진기자 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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