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1월 26일 당 대표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유 원장은 당 게시판에 올린 선언문에서 "우리 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새로운 정치세력이다. 우리 당의 뿌리를 튼튼히 하면서, 조금씩 다른 야당들과 넓고 깊게 연대하여 세상을 바꾸어 나가자"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야권의 '잠재적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그가 대권으로 가는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겁니다.
유시민 “대선출마, 할 수 있으면 해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 원장의 직업은 '시사평론가'였습니다.
손석희 교수에 앞서 <100분 토론> 2대 진행자를 맡았고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라는 책의 저자로도 유명했습니다. 경제에 문외한인 저도 공부좀 해보겠다며 이 책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 원장의 정계 데뷔는 2003년 고양시 덕양구갑에서 실시된 보궐선거입니다. 여기서 16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죠. 그는 이때부터 '뉴스메이커'로서의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국회 등원 첫날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난 게 대표적인 에피소드지요.





일부 의원들이 이 옷차림을 문제삼고 의원 선서를
보이콧하면서,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이 '기사'가 됐습니다. 유 원장은 결국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한 후에야 의원 선서를 하게 됩니다.
당시 진중권씨가 이 일에 대해 "유시민은 자신의 국회 입성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캐주얼 차림을 택한 것"이라는 식의 논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중권씨의 분석이 맞다면, 유 원장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여기 탁구치러 왔냐" vs "다름을 인정해달라" - 유시민 평상복 입고 오자 일부 의원 '의원 선서' 보이콧



유 원장은 이듬해 17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 재선에 성공했고 2006년에는 44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됩니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면서 그는 긴 앞머리가 이마를 덮던 '지식인스러운' 외모에도 변화를 주기로 합니다. '장관스럽게' 보이도록 2대 8 가르마로 스타일을 바꾼거죠.


                      2006년 2월8일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물이 가진 주목도 자체가 높아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던 유 원장은 복지부 장관 말년에 대형 뉴스 한건을 또 제공합니다. 참여정부가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라고 불렀던 기자실 폐쇄 조치의 발단이 바로 유 원장 재임 당시의 복지부 기자실이었거든요.
복지부 정책에 대한 언론 보도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있는" 기자실 문화를 뜯어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던 겁니다.



복지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유 원장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하지만 대구 민심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고, 유 원장은 권력을 잃고 '재야'로 돌아갑니다.
파주 출판단지의 돌베개 출판사에서 방 한칸을 얻어 책 읽고 글쓰는 칩거가 시작됐지요.
유 원장은 2009년 3월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을 펴내면서 다시 세상에 나옵니다.



제가 유 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던 게 이 시기입니다.
그는 담배를 끊고 커피에 취미를 붙였다고 했습니다. 파주를 찾은 저와 사진기자에게 커피 원두를 직접 갈아서 커피를 내려주시더군요.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인터뷰는 1시간 남짓 진행됐는데 말씀을 어찌나 조리있게 하던지, 기사로 정리하기가 참 편했습니다.
그 기사를 요즘 다시 읽어도 유 원장의 당시 목소리톤이나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 자신도 대화에 굉장히 몰입했던 것 같네요.  
“지난번 대통령선거는 사기, MB는 헌법을 잘 모른다”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가 책이나 쓰겠다"던 유 원장을 다시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낸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였습니다.



2009년 5월25일 서울역 앞 분향소에서 강금실 전 장관과 유시민 전 장관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해 초겨울 국민참여당이 창당됐고 유 원장이 입당합니다. 2010년 4월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출마하며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지만 낙선했지요.
시민, 경기지사 출마… 민주 ‘술렁’ 야권 연대 ‘출렁’



유 원장의 별명은 '노무현의 남자'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 유지를 계승하는 그가 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정치적 보폭을 넓혀간다면 민주당을 포함한 범 야권의 정치 지형이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치인으로서 유 원장의 장점은 팬클럽이라고 부를만한 열혈 지지층이 두껍다는 점입니다. 대단한 자산이죠.
단점은 딱 그 수만큼의 극렬 반대층이 존재한다는 점일 겁니다.
안티들은 특히 그의 '스타일'에 많은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춘 의원이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이야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고전이죠.
[여적]싸가지 결핍증

  

유 원장이 대권까지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한가지는 열혈 지지자와 극렬 반대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도'를 매혹하는 것이 될 겁니다. 중도 유권자들의 지지 없이 권좌에 오르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 말입니다.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