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 드라마 작가
한 사내가 있었다. 이름은 김영수, 현역 해군소령이라 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9억원대 군납비리를 고발했다. 군율위반이라 방송이 나갈 즈음 20년 가까이 입어온 군복을 벗어야 할지 몰랐다.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선 것은 군 정화시스템으론 정의를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란다.
‘귀관은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올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스무 살 언저리에 접했을 생도의 훈(訓)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던 그에게 양심선언은 당연한 귀결일지 몰랐다. 이 양심이 선언된 자리, 그곳이 바로 <PD수첩>이다. 김영수 소령의 양심 외에도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사건의 제보자, 삼성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수많은 공익제보자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정의를 세울 자리로 <PD수첩>을 선택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믿음 때문일 것이다. 22년 934회 방송을 통해 보여준 믿음. <PD수첩>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었고 소외된 이웃의 편이었으며 무엇보다 진실의 편이었다.
약자와 소수자 편에 선 진실. 진실은 때로 아니 자주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불편케 했다. 불편한 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방송을 막자고 들었다. 힘 가진 자는 완력으로, 부를 가진 자는 금력으로, 권력가진 자는 외압으로. 그러나 <PD수첩>은 굳건했다. ‘오직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는 방송’ 그것이 PD수첩이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즈음 <PD수첩>이 흔들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PD수첩을 뿌리로부터 흔들고 있다. 이른바 ‘<PD수첩> 죽이기’. 최승호 간판 PD를 포함한 제작진 5명을 일거에 타 부서로 발령을 냈으며 정부와 여당이 불편해 할 만한 아이템은 모조리 날렸다.
끝내 아이템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면 그 역시 타 부서로 발령을 냈다. 대북경제협력을 취재하던 이우환 PD의 경우 지금까지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발령을 내 버리기까지 했다. 그도 모자라 이젠 작가들을 모조리 해고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사전 협의 한 번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 결과, PD수첩 결방사태까지 초래하였으나 관리자와 경영진은 개의치 않는다. 일각에선 관리자와 경영진이 결방을 반기고 있으리라는 추측마저 고개를 든다. 시청자 게시판엔 “가난한 자, 빽 없는 자, 평범한 국민들을 위한 프로가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에게 미칠 영향을 무서워해서” 작가들마저 모조리 해고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게재되기도 했다.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너무도 참담하다. 여기까진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자행된 <PD수첩>에 대한 탄압만으로도 우리사회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느낀다. 언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를 재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아니던가.
방송 4사 구성작가협의회
조선시대, 전제군주들조차 가장 부끄럽게 여긴 것이 언론탄압이었다. 실록은 왕들이 거간(拒諫), 즉 언관의 간쟁을 막는 것을 최고의 불명예로 여겼음을 여러차례 기록하고 있다. 세종의 경우는 언관 뿐 아니라 일반 백성의 의견도 가벼이 다루지 않았다.
“임금으로서 포용하는 것으로 아량을 삼는 것이어서, 비록 꼴 베는 사람의 말이라도 반드시 들어보아서 말한 바가 옳으면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비록 맞지 아니하더라도 죄주지 않는 것이 아래의 사정을 얻어 알고 자신의 총명을 넓히게 되는 것”이라했다. 비록 맞지 않아도 죄주지 않겠다는 대목으로 이 전제군주가 얼마나 언론,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중시했었던 지를 가늠할 수 있다.
더욱 훌륭한 것은 이것이 선언에서 그치지 않았던 점이다. 세종은 늘 충직한 반대파를 곁에 두었다. 반대의견 경청에 인색치 않았음은 불문가지다. 바로 이점이 우리 역사 최고의 지적자산인 훈민정음 창제를 가능케 한 원동력일 것이며 세종이 오늘까지 성군으로 추앙받는 이유라 할 것이다.
때로 반대와 비판은 특히 <PD수첩> 같은 탐사프로그램에서 들이대는 날선 비판은 아프다. 아프다고 비판 자체를 막아버리면 사회는 고인물이 된다. 고인물이 썩기 마련이듯 비판이 정지된 사회는 정체한다. 정체는 곧 퇴보이니 그 사회에선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PD수첩>이 조속히 정상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 22년간 그러했던 것처럼 PD수첩이 비판자로서의 자리를 지켜줘야 우리 사회가 퇴보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PD수첩>의 정상화를 막는 모든 세력에게 요구한다. <PD수첩>에 대한 탄압은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한 탄압이니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또한 최근까지 바로 옆에서 자행되어온 탄압과 폭력에 둔감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나와 다르지 않은 수많은 당신들에게 호소한다. 우리 분노라도 하자고. 힘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 불과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면 부당함을 따져 묻기라도 하자고.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PD수첩>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만일‘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인 그들마저 잃으면 이제 누가 있어 당신의 눈이 되어 줄 것인가. 작가들의 조속한 복귀를 시작으로 <PD수첩>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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