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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기고]패럴림픽 중계는 국민의 ‘감동권’ 문제다

우울감에 빠져 삶의 의미를 못 찾던 20대 중반 어느 날, 신문 한쪽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반신이 거의 없는 장애인이 보드에 몸을 싣고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환호하는 장면이었다.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보게 됐다. 지금 평창에서 패럴림픽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20여년 전의 감동을 다시 느낀다.

 

강릉 하키 센터에서 11일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예선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연장 결승골로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미디어심리학은 한갓 남의 이야기, 그것도 꾸며낸 이야기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우리가 왜 슬퍼하고 기뻐하고 감동을 느끼는지를 탐구한다. 이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거울신경 이론이다. 영장류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는 그 이론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을 볼 때, 관찰 동물 또는 인간의 신경 체계 중 일부(즉 거울신경)는 마치 관찰자 자신이 그 움직임을 수행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즉 거울신경은 타인이 하는 행동을 자신이 직접 하는 행동과 종종 혼동한다는 것이다. 축구 경기를 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질을 해서 탁자를 깨뜨린 적이 있다면 아마도 거울신경 때문일 것이다. 거울신경의 이런 실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관찰을 통한 사회적 학습을 쉽게 하고, 타인이 겪는 감정을 자신의 것인 양 느끼게 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한다. TV드라마를 보면서 슬퍼하는 이유도, 드라마의 주인공과 자신이 동일 인물이라고 착각했던지, 또는 동일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치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 몸이 느끼기 때문이리라.

 

거울신경으로 인해 우리는 주인공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마치 자신에게 좋은 일인 양 행복을 느낀다. 등장 인물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며 우리는 유사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모든 기쁜 감정이 감동은 아니다. 감동은 감정이 크게 일어나 마음이 움직이는 것, 즉 인식이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운동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실력이 비슷한 사람과 경기해서 이기면 기쁠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진다고 예상했는데, 이를 악물고 경기해 마침내 이겼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 이상일 것이다. 역경과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보며 대신 경험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했을 때, 가깝게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컬링팀의 경기에 우리가 그토록 감동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비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알을 깨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어한다. 드라마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주인공을 볼 때,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길거리 소년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거울신경은 마치 우리가 알을 깨고 새로운 나로 변신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나로 변신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패럴림픽이다. 장애인 선수가 경기 후 환하게 웃는 모습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감동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런 감동의 드라마를 TV로 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패럴림픽 경기 중계가 외국에 비해 부족하기에 패럴림픽에 더 많은 중계시간을 편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방송사들이 이런 요청을 받아들여 우리 국민들이 패럴림픽의 감동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성은 |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